역사/한국사

요하문명-우리민족문명의 기원

정암님 2010. 7. 11. 12:58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이후 중국의 성장은 눈부셨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민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반면 고도성장으로 인한 빈부차,지방간의  성장격차는 깊어가는 환부였다 타개책은  중화민족주의고양이었다  대대적인 역사수정작업이 벌어졌다 

중국은 세계4대문명중 지금까지 영속하는 것은 자신들의 황하문명뿐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약점이 있었다 황하문명은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에 비해 천년정도 늦게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중화의 굴욕이었다

잃어버린 천년을 찾기 위한 중국문명탐원공정이 시작됐다

1980년대 요하(랴오허)부근에서 대규모 유적지들이 발견됐다 다른 문명보다 천년이상 앞서는 문명이었다

요하문명(발해문명)이었다 중국학계는 경악했다 요하는 그들이 경멸했던 오랑캐의 땅이었다

바로 동이의 영역이었다

 

 통고의 과정이었다 그때까지 중국학계는 모든문명은 중원에서 나왔다는 일원일체역사관이 정론이었다

하지만 황하문명과 비슷한 시기에 양쯔강유역에 량주문화가 존재했음이 밝혀지고 이제 그보다 이천년이상

앞선 요하문명이 발견되었다 중국은 새로운 이론을 들고 나왔다

 중국문명의 시작은 요하문명이며, 그문명과 황하문명등이 융합해서 오늘날의 중국문명을 이루었다는 다원일체론(다민족 통일국가론)이었다 덧붙여 이지역이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황제가 요하문명을 건설하고 내려오면서 중원에서 또 문명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이런이유때문에 요하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의 후예라는 것이다 이 이론을 근거로 동북지역의 모든 소수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었다 이것이 동북공정이다

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다  그것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등 한민족역사는 물론 몽고족,만주족등 동북

지역소수민족의 역사를 모조리 중국사에 집어넣는 작업인것이다 

 

                                                      <시간에 따른 요하문명의 발전상>

        명칭

      시기

     주요 유적지

     특징

 비고

 사해,흥륭와 문화

 기원전 6000-5000

 흥륭와, 사해

 빗살무늬토기,옥,

원시농경시작

 신석기시대

 홍산문화

 기원전 4500-3000

 우하량

제단,신전,적석총

 제정일치,고국탄생

 하가점하층문화

 기원전 2000-1200

 하가점

 석성,예제성립

 청동기시대,단군조선

요하문명의 유물,유적을 보면 절로 친근감이 느껴진다

빗살무늬토기,피라미드식 적석총,치가 있는 석성,비파형동검등..이런 것들은 중원에서 발견된적이 없는 한민족 문화의 상징들이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사해,흥륭와에서는 한반도신석기문화의 상징인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강단사학계에서는 한민족의 시베리아기원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지척에 시베리아보다 더 고도의 문명이 있었는데, 멀고 척박한 곳의  조악한 문명을 받아들인다는것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흥륭와문화에서 옥기도 주목해야 한다  같은 문양의 옥기가 강원도고성,전남 여수에서도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6000년까지 보고있는 옥기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원전6000년경 이미 한반도와 요서,요동이 단일 문화권이었다는 소리다 결국 1990년대 한문화의 시베리아기원설은 사라졌다

여기서 일제시대 일본인학자의 조악한 이론을 답습한 이병도일파에 의해 형성된 강단사학계의 모습을 엿볼수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때 형성된 식민사학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채, 스승의 학설이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신봉했으며 취직자리와 왕따를 이용해 새로운 이론의 등장을 억압했다 그결과 한국강단사학계는 가장 배타적인 조직이 되었으며 후학들은 고대사부분을 전공하는자들이 거의 없어 주변국들의 역사왜곡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강단사학계가 이런 모습을 일신하지 않는 한, 한국사학의 존립근거는 희미해져 갈것이다

문명이라 이름 붙일수 있는경우는 문자나 청동기 혹은 권력분립이 일어났다든지 하는 징표가 있어야 한다

요하문명에서 그 징표가 나타난 시기가 홍산문화기이다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우하량유적에서 여신을 모시는 신전(묘),제단(단),피라미드식 적석총(총)이 발견된 것이다  고대정신문명을 대표하는 유적들이 모두 나온 것이다

 

         -우하량근처에서 발견된 한변 100m의 거대한 적석총, 이집트의 계단식 피라미드보다 천년이 앞선다-

거대한 건축믈들을 쌓으려면, 여신을 숭배하는 제사장을 중심으로 계급과 사회분화가 이루어진  강력한 제정일치사회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시기를 초기국가단계(고국)로 보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신상 옆에서 곰형상들이 발견되었는데,이는 이들이 곰토템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단군신화의 웅녀족과 연결시켜 볼 수있다 발견된 돌무덤 또한 한민족의 고유묘제가 아닌가...

 

                                                               - 발견된 여신의 두상- 

하가점하층문화기로 가면 고조선의 대표유물인 비파형동검들이 나오고 고구려성의 특징인 치를 갖춘 석성들이

발견된다   강력한 왕권국가의 특징을 갖춘 이시기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사서에는 단군조선만 있을 뿐이다

요하문명의 건설자들이 모두한반도로 내려왔다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우리민족과 연결되었고

한민족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한민족을 포함한 동이는 이후 단군조선과 중원의 상(은)나라를 세우면서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모든 KBS로고 화면: 역사스페셜 화면 캡처-- 

참고자료)

1.코리안루트를 찾아서  이형구,이기환/성안당

2.KBS역사스페셜 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09.08.29)

3.경향신문 기획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4.한겨레 하니TV  청년 역사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