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따라 산길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들어서는 곳 봉화.. 한때는 화려한 불교문화가 있었고 다른 때에는
그것에 대비되는 유교문화가 있었다 광물과 질좋은 소나무가 풍부하여 일제강점기때는 일찍 철길이
놓였고 사람들이 붐비던 곳.. 지금은 한적한 농촌마을이 되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사찰과 석불은 대부분 도심이나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있었다
삼국시대 경상북부에서 소백산맥너머로 나가는길은 죽령이 유일했고 죽령을 따라 고구려와
신라의 싸움이 끊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고구려의 선진문물이 이길을 따라 들어왔으니
불교도 이길을 넘었으리라 ...오늘날 영주,봉화가 바로 이길이니 신라 불교문화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북지리 마애불
문수산자락에 앉아있는 축서사 신라의상대사가 창건했다 한다
대웅전앞 석등의 창으로 바라보는 봉화의 아름다운 하늘
무엇인가 내�고 싶고 보이는 것 모두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가
석양을 등지고 앉아있는 축서사 대탑
소나무
소나무는 우리민족과 뗄레야 뗄수없는 나무다 척박한 산성토양에서 묵묵히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는 나무..
아이들이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매달아 나쁜기운을 몰아내고 수명을 다해 죽으면 소나무관에 몸을 뉘인다
속껍질은 죽을 끓여먹고 솔잎은 귀한 차의 재료로 쓴다 잔가지는 땔감으로 사용하고 굵은 몸체는 집짓는 기둥으로
쓴다 송진은 기름으로 유용하며 소나무숲에서 나오는 물은 약수이고 뿌리에서는 송이버섯이 자란다
숲속을 산책할때는 피톤치드를 아낌없이 뿜어준다 어디 한군데 버릴곳이 없이 모든것을 내어주니 마치
어머니같다는 느낌이 드는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일제강점기 간도 용정땅에 정자처럼 평평하게 가지를 친 소나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일송정이라고
불렀다 많은 우국지사들이 그나무아래 모여 조국독립의 열정을 불태웠다 이렇듯 한그루 소나무가 한민족의
구심적역활을 하자 일제는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후추가루를 바르고 밑둥에 쇠못을 박아 고사시켜버리고 만다
그후 조선족들에 의해 다시 세워진 소나무는 민족의식고취를 달가워하지 않는 중국정부에의해 4차레나 뿌리가
뽑히는 수모를 당한다 국제사회에는 일본소나무로 불리는 우리 소나무 ..비록 이름은 잃었지만 그 누구도
우리민족과 소나무를 갈라놓지는 못할 것이다 소나무는 민족의 어머니,그리움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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