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서대문독립공원을 둘러보았다 독립문아래에서 서재필과 그의 동지들을 생각해본다
그중에는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도 있었다 저 독립문현판글씨가 당시 명필로 이름높던
그의 글씨라는 것을 아는사람이 얼마나 될까,,,
1896년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도주한다(아관파천)이후
러시아와 열강의 이권침탈이 극에 달하자 서재필,이완용,윤치호등이 독립협회를 결성한다
그들은 갑신정변의 실패를 거울삼아 한편으로는 민중계몽운동을 벌이고 다른한편으로는
자유민권,자강개혁,자주주권운동을 벌인다
남아있는 영은문의 주춧돌(주초)
게몽운동의 일환으로 중국사신을 접대한 곳인 모화관을 허물고 독립관을 지었으며 그앞의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지었다 그리고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으며 관료부터 천인까지
문호를 개방하여 정치세력화하였다
서재필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여 추방당하고 이에 윤치호는 전제군주제하에서의 완만한 개혁을추구한다 그리하여 관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의회식중추원을 설립한다
그러나 고종은 이마저도 왕권에 대한도전으로 간주, 보부상단체인 황국협회와 군대를 동원 독립협회를
해산시키고 만다
----------독립관---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1996년 다시 지었다-----------
이완용..그는 유학,불교,서양학등에 통달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서재필과 의기투합하여 독립협회를 만들고 가장많은 돈을 기부했으며 회장을 역임하였다 서재필출국령반대 집회로 생긴 만민공동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고종의 회유와 탄압에 굴하지 않아 지방관으로 좌천되고 공금유용혐의로 면직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매국노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물론 그는 자신의 처신을 극구변명한다
출처 : 나의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정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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