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평야가 협소했으므로 약탈경제에 의존하였다 그래서 크고작은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고구려는 적이 처들어 올경우 성밖의 농작물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성안에서 농성하였다 그러다가 적이
식량이 떨어져 후퇴할때 공격을가하여 승리하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고구려는 평상시에는 평지의
성에서 생활하다가 전시에는 산성에서 농성하는 이성체제를 사용하였다
--- 고구려의 초기수도로 추정되는 환인의 오녀산성 ----
고구려는 환인에서 평지성은 하고성자성을 사용하고 산성은 오녀산성을 이용하였다
발굴된 오녀산성 서문지
산성내 중요한 식수원인 천지
혼강을 댐으로 가로막아 생긴 거대한 호수
한글로 된 메뉴판 -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는지 알수 있다
방치된 고구려 돌무지무덤
고구려의 무덤양식은 초기 돌무지무덤에서 점차 굴식돌방무덤으로 옮겨간다 굴식돌방무덤은 무덤에
문이 있어 도굴이 용이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구려무덤들이 도굴되어버렸다(태왕능,장수왕능도 도굴당했다)
그래서인지 집안,환인지역에는 유난히 도굴로 부자가 된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돌방무덤은 부장품은 도굴되고 남은 것은 벽화뿐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벽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
고구려벽화는 유명해지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슬픈 비화가 있다
답사4일째 우리는 집안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집안으로 가는 도로가 산사태로 막히고 다리가 폭우로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집안을 포기하고 환인의 미창구장군묘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미창구장군묘는 여러번 도굴되어 누구의 무덤인지 알길이 없다 다만 두마리 용그림과 구름속에 그려진
임금왕자 글씨등으로 보아 제왕의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상 환인근처에 고구려외에 도읍을 둔 나라가 없었고 2대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했으므로
동명성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창구무덤가는 다리도 폭우로 봉쇄되어 있었다 우리는 안타까움을 남기고 단둥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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