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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농경의 시작과 농경문청동기

정암님 2009. 7. 4. 15:53

중앙박물관 청동기실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농경문 청동기

 충남 대전광역시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져 오는 기원전 4세기경에 제작된 의례용 청동기이다

앞면에는 따비로 밭을 갈고 괭이로 땅을 일구며 수확한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뒷면에는

오늘날의 솟대를 연상시키는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국보도 아니고 보물도 아닌것이 가장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 놓여있고,벽면에는 청동기에 새겨진

그림들이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무엇때문일까?

그것은 이 유물이 한반도 청동기시대에 농경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청동기에 나타난 그림들을 벽면에 확대해서 그려놓았다 

흔히 신석기시대를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농경의 시작때문이었다

인류의 역사에 인간의 생활에 엄청난변화를 가져온 사건들이 있었다 산업혁명과 정보통신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신석기혁명이 있었다

농경은 떠돌아 다니던 인류를 정착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잉여물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계급과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시기의 농경은 밭농사였다  조,피,수수등을 빈 땅에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생산량은 빈약하였고 아직도 대부분의 먹을것은 수렵과 어로 ,채집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한반도에는 농업혁명이 없었다 인류의 1차혁명이라고 부르는 농업혁명은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되었다 왜 그랬을까?

1만년전 빙하가 녹으면서 육지였던 서해가 바다가 되고 동해가 호수에서 바다로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날은 따뜻해지고 먹을 것은 넘쳐나기 시작했다 한반도는 낙원이었다

한반도인들은 이동생활을 포기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신석기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먹을 것을 요리하고 저장하는데 쓰이는 토기가 동아시아권내에서 이른시기에 한반도에 나타났다  

농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농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먹을 거리 걱정이 없었던 당대인들의

풍요로움 때문이 아닐까...

 

항아리에 먹을 것을 저장하는 모습

 

오늘날의 솟대같은 나뭇가지끝에 앉아 있는 새를 그린 장면

 

윗 그림은 옷을 벗고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이다

해설사가 이 장면은 옷을 벗고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표현 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중기 학자인

미암 유희춘의 문집에는 입춘날 아침 옷을 벗고 밭을 가는 조선시대풍습에 관한 글이 있다

 "매년 입춘아침 밭을 갈고 씨를 뿌려,심고 거두는 형태에 따라 해를 점치고 곡식의 풍년을 기원한다

이때 밭을 가는자와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옷을 벗게 하여 차가운 기운을 몸에 닿게 하니..."

이는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로 청동기에 새겨진 밭가는 모습과 같다

이때 나는 의문이 생겼다 간단하게 선 몇개로 그린 그림을 보고 옷을 벗었는지 입었는지를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나는 질문했다

 

그려진 사람의 아랫부분을 보란다 남성의 상징물이 우뚝하지 않는가...그것으로 이 남자가

옷을 벗고 농사짓는것으로 판단할수 있다는 것이다

 

추천 다큐: EBS 다큐 프라임 "한반도의 인류" 3부작

              09년 6월22-24일 반영

             70만년전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구석기와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강력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