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연꽃이 지천이었다. 불교는 재빨리 연꽃을 자신들의 장엄에 사용하였고, 활짝 핀 연꽃을 깨달
음에 비유하였다. 한반도에 불교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물이 고인곳마다 연꽃을 심었다. 그래서 못이
연못으로 불리게 되었다.
불교에서 장엄으로 연꽃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꽃이 모란이다. 모란은 중국인들이 좋아했다. 부귀
와 다복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모란을 꽃들의 왕,화왕이라고 불렀다.
불교가 중국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의 습속이 많이 도입되었다. 모란도 그중 하나다. 연꽃이 불교적이
라면 모란은 귀족적이다.
절집장식용 꽃중 흐드러지고 푸짐한 면이 느껴진다면, 모란으로 보면 되고, 선이 뚜렷하면서 단정한 느
낌이 있다면 연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측면구도로 풍성한 느낌을 준다면 모란으로, 위에서 보는
시각으로 원형구도와 중앙에 연밥이 있다면 연꽃으로 이해하면 된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절집전체를 장엄하는것보다 주불전에 장엄이 집중됐다.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불전은 온갖 장엄으로 화려해지면서, 신도들을 유혹했다. 불국토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면서
말이다. 꽃살문도 이런 흐름을 타고 유행했다. 꽃살문은 정토로 들어가는 입구를 상징했다.
정수사 꽃창살의 특징은 꽃병이다. 드문 문양이지만 꽃병은 상서로운 기운,보배,불로불사묘약등을
담고있는 귀한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꽃창살은 통판에 조각되었으며, 꽃병에 연꽃과 모란이 담겨있는 화려한 문양이다. 통판투조 꽃살
문은 널판에 꽃문양을 통채로 새겨 문틀에 끼운것으로, 정수사 대웅보전, 용문사 윤장대,성혈사 나
한전,선암사 원통전이 있는데,이중 으뜸은 선암사 것이라 한다.
정수사 꽃살문은 고색창연한 맛이 없다. 긴 세월에 부대낀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마 몇(십)
년 전에 깨끗이 수리하고 색도 다시 칠했지 않나 싶다.
통판 꽃살문의 매력은 은은한 빛 그림자라는데 뒷면에서 몇장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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