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세계에서 자연철학이 탄생했을 때 발생한 가장 큰 성취이자 문제점-성취와 문제점은 흔히 동전의 양면이다-은 환원주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의 다양성을 넘어 하나 또는 소수의 아르케 찾기, 생성을 넘어 영원한 것 찾기, 개별성을 넘어 보편성 찾기, 차이생성을 넘어 동일성 찾기와 같은 자연철학의 성격은 다른 문명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리스 특유의 지적 성취를 가져다 주었다. 동시에 그러한 환원주의는 결국 세계의 다양성, 생성, 우발성, 개별성, 차이/차이생성의 실재성을 부정하기에 이르고 , 철학자들은 실재에 대한 지식과 현실에 대한 경험 사이에서 이율배반에 빠지고 만다.(물론 이 과정을 통해서 현실과 실재를 오가는 수준 높은 사유들이 개발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환원주의는 필연적으로 일신교로 귀착되었고, 초월적 차원의 강박으로 흘러갔다. 게다가 일신교들에 기반을 둔 초월성 희구는 걸핏하면 전쟁으로 흘렀고, 이로인해 숱한 비극이 양산되었다. 환원주의 그리고 일신교적 초월주의야말로 지중해세계 사유의 질곡이었다.
이에 비해 동북아세계에서의 철학은 다른 형태의 질곡을 보여준다. 고대 동북아 철학은 하늘의 길과 사람의 길, 땅의 길이 서로를 이반함이 없이 유기적/조화로운 체계를 이룬다. 즉 하늘의 저편으로 나아가 실재를 찾기보다는 현실에 드러나는 하늘 그대로와 땅, 사람의 유기적 관게를 근저에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 사유는 환원주의의 질곡을 피해갈 수 있었고, 인간과 유리된 세계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세계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동북아철학은 하늘의 길(과 땅의 길)을 그 자체로서 탐구하기를 게을리하고, 너무 쉽게 인간 쪽으로 잡아당겨 해석함으로써 사유의 자의성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는 곧 이 문명 근저에 스며든 주술성으로 나타났다. 그 자체로서 탐구된 객체성보다는 주체성의 편의에 너무 쉽게 종속시킨 객체성은 곧 주술성으로 나타난다. 거칠게 말해, 서양이 객관주의라는 병에 걸렸다면 동양은 주관주의라는 병에 걸렸다고 하겠다. 동북아세계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이 주술성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동북아 문명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지중해세계에서 뻗어나온 사상들이 환원주의와 초월주의라는 병을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다면,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세계의 사상들은 인간중심주의와 주술성이라는 병을 앓았고 지금도 앓고 있다. 동북아 사상의 기본토대가 역학과 기학이고 지금도 우리들의 잠재 의식 속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라.
발췌)
1. 세계 철학사 2/ 이정우 지음/ 길 출간/ 3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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