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사

열국지/ 난세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정암님 2010. 2. 25. 15:16

피와 눈물로 얼룩진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는 550년간 계속되었으며 마침내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었다

역사는 그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렀다

주나라가 약해진 후 550년간 계속된 제후들의 싸움,

강한자만 살아남았던 약육강식의 시대,

 좋은 사람은 오지 않고,오는 사람은 악인들뿐인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

청동기에서 철기로 이행되고 귀족제가 무너지고士(사)족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하극상의 시대.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모든 중국 사상은 이시기에 태동했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군주들은 부국강병을 원했다 그래야 살아남을수 있었다

두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복고적이었고 유가가 대표적이었다

다른하나는 개혁적이었고 법가로 불렸다

종주국 주나라는 예법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귀족은 예로서 대하고 서민은 형벌로서 다스렸다

법가는 귀족과 왕족의 특권을 부정했다 법은 모든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개혁적이었다

이를 통해 귀족세력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형성해서 부국강병을 달성할수 있다고 믿었다

유가가 있었다 그들은 이난세를 마무리하는 길은 오직 인의의 정치뿐이라고 설파했다

 유가는 예에 의한 통치를 서민들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가 있었다 그들은 형벌에 의한 통치를 귀족에게 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귀족세가 약했던 변방의 진은 법가를 받아들였다

진의 상앙은 연좌제를 실시하고 밀고정치를 장려했다 모두가 두려워했다

 법의 적용에 신분을 가리지 않았으며, 공이 없는자는 왕족이라 하더라도 특권을 박탈했다

지방을 귀족들에게 식읍으로 주지 않고,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군현제를 실시했다

한집안에 성인남자가 둘이상 있으면 무조건 분가시켰고, 농사를 지으면서 재를 거름으로 쓰지 않는자는

노비로 삼았다 기준량보다 많은 곡식을 생산한 자는 부역을 면제시켰다

농업생산력은 급격히 늘었고 국가재정은 풍성해졌다

사마천은 이렇게 전한다

"10여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자가 없었고 산의 도적이 사라졌으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했다  전장에서는 용감했고 사사로운 싸움에는 겁을 먹었다 "

위수의 강물은 항상 붉었다 상앙은 하루에 7백명씩 위수강가에서 죄수들을 처형했다

 옥마다 죄수들로 넘쳐났고, 백성들은 이익만 알뿐 의리를 알지 못했다

 진은 홀로 천하에 우뚝 섰다 통일은 시간문제였다 

 기원전221년 진왕 정은 마지막 남은 제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다 그가 진시황이다

법가의 제도는 중국전체에 이식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망할때까지 중국의 기본틀이 완성된 것이다

진시황이 죽자,진은 멸망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의리를 알지 못했다 

그후 법가는 다시는 맨얼굴로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그들은 항상 유가의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부국강병이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봉건왕조에서 왕은 항상 법위에 존재했다 왕의 뒤에는 기득권세력이 숨어있었다

현명한 자가 왕이었다면 국가는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어리석고 무능했다

법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도구가 되었다  결국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는 멸망했다

법가들은 대부분 왕을 위해서 일했다 그러면서 권력에 중독되어 갔다

통일이 이루어지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했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현대라고 어찌 이런 모습이 없겠는가...역사는 돌고 돌뿐이다...

 

열국지는 이 시대를 기록한 전국책을 소설화한 책이다.

시기가 길고 등장인물이 많기 때문에 내용이 분산되는 느낌이 있어

삼국지처럼 집중도가 뛰어나지 못하다.

하지만 나는 읽고 또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