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주말사극 근초고왕을 재미있게 보고있다.
추노에 육박하는 액션신, 탄탄한 시나리오,걸쭉한 대사에 배우들의 연기까지 빠지는 것이 없다
2010년에 반영된 사극중에서 꼽는다면 추노 다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다.킬링타임용으로 강추다.
총70부작 예정인데 현재 20부를 넘어가고 있다.
백제내부에서는 고이왕계와 초고왕계의 대립을,국외에서는 고구려와 갈등을 헤쳐나가며 위대한
정복군주가 되는 근초고왕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보고 있노라니 과거에 읽었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김성호 저)책내용이 떠올랐다.지금은
한물 간 이론이지만 백제초기사의 미스터리를 파헤쳐 당시 주가를 떨쳤던 학설이다.
한국고대사는 사료와 유물,유구의 절대부족으로 모르는부분이 많다.
그래서 갖가지 주장이 난무하지만,무엇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근초고왕
백제초기사는 미스테리의 연속이다
그 의혹의 핵심은 건국주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건국주체로 온조설,비류설,구태설 세가지를 설명하고 어느주장이 옳은지 알수 없다고 적었다.
온조설은 비류와온조를 주몽의 친아들로 묘사했고(고구려 계,),비류설은 두명이 북부여왕의 서손인 우태의
아들로 주몽의 양자라고 기술했다(고구려와 연관된 부여계).구태설은 고구려와 무관한 부여계설화이다.
일반적으로 미추홀을 기반으로한 해양세력인 비류계(부여계)와 한성을 기반으로한 농경세력인 온조계
(고구려계)가 연맹을 형성했고, 초기주도권은 비류계가 장악했으나(비류가 형),시간이 지나면서 온조계에
흡수된것으로 해석한다. 그후 온조계가 역사를 자파위주로 서술하면서 초기백제사에 모순이 생겼다는
것이다.
대표적 쟁점기록이 온조왕13년조(기원전 6년) 영토기록인데, 영토가 남북으로는 예성강에서 금강까지,
동으로는 춘천까지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3세기중반에 저술된 중국사서 삼국지에는 마한 54개국중
하나로 평범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들을 근거로 강단사학계는 온조계가 역사를 재편하는 속에서,
시조인 온조를 높이고자 후대의 정복기록들을 앞당겨 집어넣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온조이후 비류계와 온조계의 두왕통을 단일왕통으로 합치는 과정에서 12대 계왕까지의 기록이
변조되거나 뒤죽박죽이 되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이시기의 왕들은 100세를 넘긴 왕들이 많다.
3대 기루왕이 최소 100세,8대 고이왕이 최소 120세,11대 비류왕이 최소 110세이다.
8대 고이왕(재위기간 234-268)은 베일에 싸인 왕이다.우선 가계가 불확실하다, 그리고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일각에서는 그를 또다른 백제시조인 구태와 동일시하고 비류계로 간주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이때 왕통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극 근초고왕은 고이왕계와 초고왕계의 대립을 깔고
극을 전개한다 근초고왕은 초고왕 혈통(온조계)으로 복귀를 선언한 이름이다
고이왕은 6좌평16관등제를 도입하고 율령을 반포하는등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한 왕으로 기억되지만,
그 시기가 고구려보다 매우 빨랐다.그래서 후대 왕들의 업적을 삽입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이시기에 거대한 적석총(돌무지무덤)들이 나타났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은 3세기중엽-
4세기초엽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석촌동3호분의 경우는 밑변의 길이가 고구려 장군총보다 더 길다
온조만큼이나 많은 업적을 남긴 고이왕,거대한 적석총의 출현..이 시기에 백제에 무슨일이 있었을까?
두 왕통이 혼재된 초기백제사...이것을 정리하기 위해서 대륙백제설(이도학 주장),비류백제설
김성호 주장)등이 나왔다. 심지어 일제 식민사학은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을 들고나왔고 오늘날
강단사학의 주이론이 되었다. 따라서 강단사학은 고이왕이전의 초기백제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풍납토성이 발굴되고있다.지금은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거의 굳어졌지만 출토유물로 보아 축성시기가
기원전 1-2세기까지 올라가고 있다.가장 연대가 가까운 유물도 3세기전후다.
빠르면 온조왕의 건국시기와 맞닿는다는 소리다.그시기에 이런 대규모 성을 축조할 정도라면
강력한 왕권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이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요구한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었던 풍납토성은 토성내 주거지 매입비용이 책정이 안되
지지부진한 상태다 당시 2-3조였던 땅값은 부동산버블로 지금은 10조를 웃돌고 있다.
대규모 개발광풍으로 한국역사의 중심지인 수도권에서 제대로 된 발굴이 지금까지는 없었다.
과연 풍납토성은 한국의품페이로,제대로 된 발굴이 이루어질수 있을지 ....
풍납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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