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VS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슬픈 아일랜드..800년간 탄압과 수탈속에서, 주린배를 움켜안고 살아왔다. 말을 뺏기고 땅을 잃었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고 총을 잡았다.1921년 영국과 자치협약이 성립되자,찬성파와 반대파사이에 내전이
터졌다.조국의 해방을 꿈꾸며 목숨을 함께한 동지였지만, 서로에게 총을 겨눴다.서로의 적이된 동지들
은 쓰러져갔다.그속에 아일랜드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마이클 콜린스도 누워 있었다.
영화 마이클 콜린스는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독립군을 이끌고 눈부신 전공을 세웠지만,영국이
내민 자치협약을 받아들였다.협약의 내용은 아일랜드의 자치를 인정하지만 영국여왕을 국가원수로
받들고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마이클 콜린스는 영국은 중요식민지가 많기때문에 전례를 두려워해서 그이상은 결코허용할 생각이
없고 현 아일랜드군의 전력상 더이상의 싸움은 큰희생만 초래할 뿐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자치를 하
면서 실력을 키워 점차 독립을 쟁취해가자고 설득했다.
다른 시각이 있었다.그들은 이것을 식민지상태를 연장하려는 기만적 술책으로 보았다.이 협약은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일본천황을 국가원수로인정하고 자치령이 되는데, 일본인집단거주지는 일본
영토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동지들이 이 입장에 섰다. 그들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주인공들이다.그들에게 마이클 콜린스는 반역자일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쓰러져 갔다
미래의 조국은 형제였던 동지들을 죽여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이기를 바라면서....
영국은 800년간 아일랜드를 가혹하게 통치했다. 땅을빼앗고 무거운 세금을 물렸다.영어를 강요했고
아일랜드어를 쓰는 사람은 그자리에서 죽였다.
1845년 19세기 최대의 재앙이라는 아일랜드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7년간이었다.주식인 밀과 곡물을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감자로만 연명하던 100만명의 사람들이 굶어죽었다.또 다른 400만명은 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낡고 불결한 배속에서 승선인원의 60%가 죽었다.
영국은 보고만 있었다. 이것은 모두 게으른 아일랜드인에 대한 신의 섭리란 것이었다. 그들에게 아일
랜드인은 하얀 검둥이,하얀 침팬지 일뿐이었다.
아일랜드인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수 없었다.스스로 일어나야 했다.아일랜드 독립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16년 부활절봉기가 실패한후,마이클은 전면전보다는 게릴라전을 채택한다.영국군과 밀정들을
암살하고 주요건물들을 타격했다.그의 게릴라전은 정교해서 모택동이 교범으로 삼았을 정도다.
영국군은 대테러부대를창설해서 고문과 학살로 맞대응했다.하지만 아일랜드인의 투쟁의지를 꺽지
못했다.싸움은 영국본토까지 확대되었다.1922년 영국은 자치령을 제안했고 마이클 콜린스등이
수용했다.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총을 들었다
1922년 내전이 터졌다.1923년 조약찬성파가 승리했다.1937년 정식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는 지금도 영국령이다..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현재 아일랜드 교과서는 마이클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그의 고향집에 세워진 팻말에는 반역자라는 내용과 독립의 아버지란 찬,반 내용의
낙서가 어지럽게 써져 있다.
여담이지만 아일랜드에 관한 영화가 드물지 않게 만들어지는것은 미국내 아일랜드계들의 파워
때문이다. 신대륙으로 건너온 아일랜드인들은 억척스럽게 살았다. 주류인 영국계는 카톨릭인
그들을 멸시했다.그 와중에서도 아일랜드계 대통령을 10명(케네디,닉슨,레이건,클린턴등)배출
했고 약 3400만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미국인구는 약 3억)이 살고 있다.
수백년간의 언어탄압으로 아일랜드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인구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영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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