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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권 답사기1편) 늙은 돌거북의 울부짖음: 태종무열왕비

정암님 2013. 8. 14. 22:17

오래전부터 신라인들은 경주 근처에 있는 오악을 숭상했었다. 북쪽의 소금강산(142.6m), 남쪽의 남산

(494.4m 금오산이라고도 한다),동쪽의 토함산 (745m),서쪽의 선도산(381m),그리고 단석산(827.2m)을 

중악이라 부르며 신성시했다. 불교가 융성하자, 이 신성한 산들에 많은 불교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

다.


                                                           경주의 오악

서라벌은 궁성인 월성을 중심으로 정비되어 갔다. 월성은 현재 시내권이니 경주의 유물,유적은 경주시

내와 그 주변인 남산,낭산,토함산주변에 몰려있다. 대부분의 경주답사는 3-4일이내라, 그 일정으로는

이 주변을 훑어보는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래서 외진 서악권(선도산,단석산일대)까지 둘러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동선연결도 쉽지 않은데다, 볼만한 유적도 손에 꼽을 정도니 말이다.


 경주를 돌아봤다고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보아야 할것이 몇개 있다.  나는 그 목록에 꼭 태종무열왕비

를 집어넣는다. 한번 보면, 많은 이들이 동의할것이다. 기왕 외진 서악권으로 왔다면 선도산 마애삼존

불과 단석산 마애불상군도 보기를 권한다. 가는 길이 쉽지않아 두번 오기는 힘들것이기 때문이다.

또 서악권은 서쪽의 적들이 쳐들어 오는 길목이었다. 선덕여왕때 백제군 특공대가 전멸한 여근곡도 이

곳에 있다.


                                                           경주 서악권의 대표적 유적들

 

661년 김춘추가 죽었다. 아들인 문무왕은 법흥왕이래 김씨왕들의 세장지인 서악 선도산에 아버지를 묻고

그앞에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비석을 세웠다. 그전까지는 비석을 세울때, 땅에 묻거나 자연석을 이용했

지만, 돌거북받침(귀부)에 비신을 세우고, 용의 모습을 새긴 머리돌(이수)을 얹은 당나라양식을 최초로 이

땅에 세운것이다. 그후 이양식은 8-9세기에 거북머리가 용머리로 바뀌기는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석비(탑

비)의 전형으로 답습된다.

 

                                                            석비(탑비)의 일반적 구조

 

비석은 조선중기까지 남아있었던 모양인데, 이황의 편지에 경주유생들이 그 비석을 깨뜨려다 벼루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꾸짖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신 조각 하나도 없이 돌거북받침

과 머리돌만 남아있다.

 

 

                                                                  무열왕릉비(국보 25호)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험악하고 지저분한 용머리만 보다가 매끈한 거북머리를 보니 경쾌하고 시원한 바

람을 맞은것 같은... 더구나 이 양식의 원조 비석이라니 ...나이는 최고령할배인데 얼굴은 간지나는 동안

이랄까..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에서 가장 빼어난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다한다. 아무튼 오래도록 들여다 보게 만드는 돌거북이었다. 참 이놈을 보려면 입장료가 500원이다.


                                                                                    머리돌 (이수)  전면


                                                                                      머리돌 후면


여섯마리 용이 좌우로 세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을 표현한 머리돌이다. 머리돌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김인문이 쓴 명문이 있다. 신라왕릉 대부분이 묻힌자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심

한데, 이 왕릉은 누구도 논쟁를 걸지 않는다. 바로 이수 중앙에 조각된 이 명문때문이다.





돌거북의 턱주변에 녹물이 든것이 아니고,거북은 힘을 줄때 턱밑이 붉어진다.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자연석의 붉은 부분을 거북의 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앞발


                                                                                      뒷발

앞발가락이 다섯이고, 뒷발가락이 넷인데, 이는 거북이 힘치게 나갈때 뒷발의 엄지발가락을 안으로 밀

어넣고 힘을 주기에 넷으로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본딴 것이라 한다.




                                                                   무열왕릉


그대, 무열왕비를 보았는가? 보지 못했다면  다음 경주방문에서 꼭 보고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