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없었다. 기원전 2000년경 아리아족은 중앙아시아초원에서 대이주를 시작했다. 그중 한
일족이 그리스반도로 남하했다. 하지만 그들앞에 펼쳐진 지역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험준한 산악지대가 끝없이 이어지고, 그사이의 좁은 구릉지에는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황량하
고 척박한 땅이었다.
여름 석달동안은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어, 땅들이 쩍쩍 갈라지고 전체 강
우량의 90%가 불과 한두달사이에 쏟아져 애써 개간한 땅들을 쓸어가 버리는 저주의 땅...
그나마 그 강우량마저도 연평균 400mm에 불과해 강줄기는 있으되 강물이 흐르는 강은 거의 없었
다. 오죽하면 고대 그리스철학자 플라톤이 지중해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그리스와 팔레스타
인을 꼽았겠는가
하지만 굶어 죽을수는 없었다. 그리스지형은 크게 고지대,가경지대,경사지대로 나눌수 있다.
그중 가경지대는 가장 작은 부분이지만 농사가 가능했고, 경사지대는 목축지라 양과 염소를 방목
할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에서는 소와 돼지가 귀하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우유 대신
양유를 먹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대신 양고기를 먹었다. 제사에서도 양을 희생물로 바쳤다.
그리스땅은 비옥하지 않지만, 배수가 잘되는 석회암 토양이라 과수재배에 적합하다. 그리스인들
은 보리와 밀을 심고,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올리브,포도,무화과,레몬등을 재배했다.
그들은 부지런히 일했다. 곡식과 과일을 재배하고, 양과 염소를 키웠다. 하지만 척박한 자연환경
은 그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지 않았다. 곡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살려면 곡물을 수입해야 한
다.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두려워했다. 아니 그들은 바다를 본적이 없었다. 그들의 말중에는 바다를 뜻
하는 말이 없었으며, 나중에 바다를 의미하는 탈랏사라는 단어는 다른 민족에게서 차용한 말이다.
해류와 폭풍이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바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는 바다..그곳으로 나아가야
했다. 살기위해서..그리스인들의 성서인 오딧세이아는 그들이 바다를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를 실
감나게 보여준다. 오딧세이아의 바다는 거친 지중해였지만, 다행히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에게해가
있었다.
에게해
에게해의 바닷물은 깊고 푸르다. 에게해에 접한 연안은 방파제처럼 두툼하고, 해상에 뿌려진 수많
은 섬들은 바람의 양을 적절한 세기로 조절해 준다. 덕분에 바람은 메마르거나 습하지 않고, 폭풍우
처럼 거세지 않아, 바다를 항해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해준다. 이 바다위에 숱한 이야기와 전설
을 뿌리면서, 그리스인들은 에게해로 진출하여 연안지역인 소아시아일대에 식민시들을 건설한다.
그리스 식민시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소아시아 연안지역을 이오니아라 부르며, 이지역들은 발
달된 오리엔트지역의 선진문화를 흡수하면서 그리스문명의 발상지가 됐다. 기원전 4세기경 페르시
아전쟁이 터지자, 많은 이오니아 지식인들이 그리스본토로 도피하면서 오늘날 서구문명의 모태인
그리스문명이 개화된다. 즉 그리스문명에는 오리엔트문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오리엔탈리즘(서구우월주의)에 물든 서구학문을 습득하고 돌아와서, 서구
우월주의를 앞장서서 전파하는 개념없는 자들이 교수랍시고, 학계에 차고넘치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에게해를 통해서, 흑해와 이집트의 곡물과 선진문물을 수입할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대신 무엇을
주어야 할까? 그리스인들은 고심했다. 줄 것은 올리브와 포도주뿐이었다.
올리브와 포도주는 건조하고 매마른 땅에서 잘 자랐다. 그리스인들은 올리브를 먹기도 하고, 기름
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 기름을 음식에 듬뿍넣어 먹기도 하고, 음식을 튀길때도 사용한다. 또 불을
밝히는 등유로, 세수도 하고 손발에 바르는 보습제,비누,화장품으로도 사용했다.
이렇게 올리브는 쓰임새가 많아 인기가 좋았다. 포도주도 알아주는 상품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도
기에 넣어 수출했다. 그리스의 도기는 공기투과성이 높아서 포도주가 변질되지 않을 정도로 질이
높았다. 그래서 농가나 가정에서 저장용으로 선호했다.
항아리의 인기가 높아지자 , 도기도 주요 교역품의 하나가 되었으며, 특히 코린토스와 아테네의 도
기가 인기가 높았다. 나중에는 아테네 도기가 인기를 독차지 했는데, 그이유는 아테네의 진흙이 더
붉은 색을 띠었기 때문에 붉은 색을 좋아하던 고대인들이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테네에
민주정이 만개하자 자유로운 창작환경이 만들어지면서 휠씬 독창적이고 미학적으로 우수한 도기들
이 쏟아지며 시장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그리스문명은 배고픔을 먹고 자랐다. 척박한 환경은 그들을 바다로 내몰았으며, 그들은 해적질과 상
업으로 연명했다. 무역에 목숨을 걸다보니, 합리적 판단력과 계산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합리성,이성
의 발달을 가져왔다. 마침내 그들은 다른이들이 자연현상을 신의 행위로 생각할때, 이를 부정하고
자연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 본질적인 것들이 이합집산 내
지 변화하면서 세상만물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의 탄생이다. 학문이 탄생한것이다.
그리스문명은 다른문명에 비해 독특한 점이 있다. 다른 문명은 모두 강을 끼고 발생한 정주문명인데
비해 그리스문명은 바다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더구나 육지도 산으로 서로 갈라져 있어 그 사이마다
조그만 폴리스들이 형성되어 통일된 거대국가를 이루지 못해 중앙집권적 거대 권력이 자리잡지 못했
다. 이런 특성들이 어울려 그리스문명이 인류에게 선사한 두가지 위대한 보물인 민주정과 철학을 탄
생시켰을 것이다.
그리스문명의 또다른 특징은 시각문화라는 것이다. 무역을 통해 먹고 살아야 했으니 보는 것을 중시
하고 이성이 발달했다. 이는 청각을 중시하는 히브리 문화와 대비된다. 히브리 성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라며 청각을 강조했다. 그리스문화는 시각중심이기에 조각과 건축이 두드러지게 발달했다.
그리스인들은 척박한 조건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한사람이 농업,어업등 여러가지 직업을 가져야
했고 여기서 그리스인들의 다면적 성격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한가지에만 능한것은 기형으로
여겼으며 모든 면에서 뛰어난 만능인을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그들의 척박한 삶의 환경이 그리스인들을, 그리스문명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참고)
1.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김진경 지음/ 안티쿠스
2. 세계철학사/ 이정우 지음/ 길
3. 그리스의 시간을 걷다/ 김덕영 지음/ 책세상
4. 그리스인 이야기/ 앙드레 보나르 지음/ 책과 함께
5.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지음/ 리더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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