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공론정치를 표방했다. 공론정치란 유림의 여론을 따라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 정치를 말한다.
사림이 권력을 장악한 16세기이후, 조선은 왕권과 신권, 언관권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는 정치구조를 만들었다.
국왕이나 신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국정을 운영하며 여론의 매서운 비
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당시 언론이 언관이라 불리는 사간원, 사헌
부, 홍문관 관료들만의 몫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유생들의 여론 또한 무시 못할 영향력
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유생들은 상소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했다.
유생이 올리는 상소를 유소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유생들의 집단 상소를 의미한다.
유소는 크게 성균관과 사학 유생들이 주도하는 관유소, 향촌 유생들이 주도하는 향유소, 관유소와 향유소의 복
합상소인 연합소로 나누는데, 이중 향촌의 공론을 모아서 올린다는 향유소가 만들어 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1. 상소할 일이 있으면 향촌의 장로에게 그 뜻을 전달하여 허락을 구한다.
2. 상소를 위해서는 유회의 개최가 필요하다. 통문으로 서로 연락하여 유회의 날짜와 장소를 정한다. 상소는 참
여 인원이 많을수록 효과가 크기 때문에, 고을 규모에 따라 몇 명씩 참가인원을 할당하여 유회에 참석하도록
권한다. 그리고 참가자편에 상소에 찬성하는 고을 유림들의 위임장을 가져오도록하여, 그 이름을 상소문에
기재한다.
3. 유림들이 모이면 임원을 구성하고 상소를 작성한다.
우선 대표이자 연명상소의 첫머리에 이름을 적는 소두(소수)를 3배수 추천자들 중에서 다수결로 선출하고, 이
후 소두를 도와 일을 추진할 장의, 재무담당인 유사(소색)등을 뽑는다. 그리고 상소문을 작성할 제소, 상소문
복사자인 사소등도 선임하여 상소문 원본인 소본을 작성한다.
4. 소본이 채택되면 연명을 한다. 연명은 자필을 원칙으로 하였다.
5. 만약 상경하여 직소하려 한다면, 소두일행과 같이 갈 사람들을 고을마다 안배하고, 필요한 제반 비용은 고을
마다. 또는 각 향교, 서원마다 일정금액을 배정하여 납부토록 하였다.
6. 서울로 올라간 상소자 일행은 친교가 있는 관료들의 집을 숙소로 정하거나 일정한 거처를 정해, 소청을 열고,
여론을 탐문하고, 다른 이들의 자문을 얻어 상소문을 다듬은 다음 승정원에 제출한다. 그리고 임금의 대답을
받은 다음에 귀향하였다.
혹 임금이 직접 상소문을 받고자 할 경우에는 소두가 봉소유생(상소문을 받들어 올리는 유생)과 독소유생(상
소문을 읽는 유생)을 대동하고 승정원에 들어가 상소문을 읽고 제출하는 절차를 밟기도 하였다.
상소를 올린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유배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참고)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지음/ 집문당
[출처] [본문스크랩] 조선시대 유생상소와 공론정치|작성자 Dream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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