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국사

신라의 3대 보물

정암님 2019. 1. 30. 15:54


신라의 3대 보물이라는 것은 황룡사의 장육금상(크기가 6자나 되는 금불상)과 9층탑, 그리고 진평왕의 옥대다.


진평왕은 돌계단 3개를 한 번에 밟아 부숴뜨렸다고 할 정도로 거구였다. 그래서 그의 허리띠도 대단히 컸다. 그 길이가 열 뼘(약 152  cm)이나 되고 허리띠에 달린 금과 옥으로 꾸민 장식만 62개였다고 한다. 허리띠는 동으로 싸서 금을 입힌 금동제품으로 옥구슬로 장식했다. 전체적인 모양은 우리가 요즘보는 신라시대 허리띠와 유사했을 것이다.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출처: 문화재청)


진평왕의 옥대를 헌납한 사건은 <삼국사기>에는 경명왕 5년(921) 1월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에는 937년 5월 신라가 망한 후 경순왕이 경주의 사심관으로 있을 때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건의 진상은 <고려사>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정황상으로는 두 왕 때 모두 옥대를 바칠 만한 근거가 있어서 판단하기가 애매하지만. 편찬연도 상으로는 <삼국사기>가 앞서므로 경명왕 때로 심증이 간다.기록을 보면 왕건이 신라에게 성의를 보이라며 진평왕의 허리띠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신라왕과 대신들이 그 소재를 몰라 허둥댔고 겨우 황룡사의 노승에게 정보를 얻어 옥대를 찾았다고 하는데, 왕건은 어찌하여 대보의 위치를 모를 수 있느냐며 신라의 변명을 코웃음치고 있다. 아무튼 경명왕 때로 치자면, 신라는 반발하는 세력을 누르고 진평왕의 옥대까지 바쳐가며 고려와 동맹을 맺었다. 신라의 살 길은 고려와의 동맹뿐이었기 때문이다.  


발췌요약)

한국고대전쟁사 3/ 임용한 지음/ 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