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국사

일제강점기 오산고보 졸업생들의 진학 선호도 / 일제하 교육 시스템

정암님 2019. 2. 9. 02:56


1929년 첫번째 졸업생을 배출한 경성제대는 자타가 고인하는 식민지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다. 1924년 설립된 경성제대는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신입생들이 2년동안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예과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의 학제는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조선에는 중학교로 간주되는 고등보통학교(고보)가 있었을 뿐 일본본토와 같은 정식 '고등학교'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본토의 구제(舊制) 고등학교, 말 그대로 하이스쿨은 합격이 지극히 어려웠지만 일단 붙기만 하면 출세로 나가는 지름길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일고등학교, 제이고등학교처럼 숫자가 붙은 이른바 넘버스쿨을 나오면 교토제대, 도후쿠제대, 규슈제대의 대부분 학과에 무시험 입학이 가능했다. 고등학교에서 극심한 경쟁이 벌어진 것은 도쿄제대에 가기 위해서였다. 도쿄제대가 아니라면 굳이 공부에 목을 매달 이유가 없었다.


조선에서 일본본토의 고등학교와 비슷한 학력을 인정받는 학교는 경성제대 예과가 유일했다. 예과 2년을 마치면 본과로 진학하여 법문학부는 3년, 의학부는 4년과정을 이수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경성제대나 전문학교 출신 고학력자들에게는 특권이 있었다. 조선인 관리의 특별임용에 관한 건(칙령 제396호) 규정에 따라 졸업 후 무시험으로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학벌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정도 자리를 얻을려면 판임관견습 시험이나 보통시험 같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실제로 경성제대나 전문학교의 많은 졸업생들이 서기나 하급관료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행정부의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고원은 관청에서 사무를 보조하는 직책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 초임 월급이 달랐는데 1932년 기준으로 보자면 경성제대 출신은 65원을 받아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이 때 중등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을 받았다.


오산고보 졸업생들을 인터뷰한 훗날의 기록을 보면 당시 학생들의 진학선호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오산고보에서 1등 한 학생들은 경성제대 예과나 일본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일본 고교에 진학하면 일본의 제국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 다음 그룹은 일본의 와세다대, 메이지대, 게이오대나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다. 경성의학전문, 경성법학전문, 경성공업전문. 경성상업전문 같은 조선의 공립학교는 그 다음 순위 학생들의 몫이었다. 여기까지가 대체로 특출난 학생들이었다. 일반적인 학생들은 보성전문, 연희전문, 불교전문, 혜화전문에 진학했다. 또 일본 유학도 많이 갔는데 주로 주오대, 메이지대, 니혼대 같은 사립대에 딸린 전문부로 진학했다. 


경성제대 예과가 고등학교 역활을 하는 것처럼 일본의 사립대 예과도 비슷한 기능을 했다. 즉 고보학력(중학교)으로 정식 고등학교 대신 사립대 예과를 거쳐 본과에 올라가는 게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조선 출신 유학생 중에 이런 정규과정을 다닌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신 와세다대, 간사이대, 리쓰메이칸대, 메이지대, 주오대, 니혼대 같은 일본 사립대들이 정규과정에 덧붙여 운영한 3년제 전문부에 다녔다. 전문부는 입학 시험만 합격하면 누구나 진학이 가능했다. 입학 시험에서도 까다로운 학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립대들은 전문부를 따로 운영함으로써 학교 재정을 보충했다. 야간도 많았다. 전문부를 졸업하고 본과에 진학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도 공부하는 데 많은 돈이 들었다.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은 집안이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에도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발췌 요약)

법률가들/ 김두식 지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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