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문왕이 왕이 된 후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동해의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에는 갈라져 둘이 되고, 밤에는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신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현지에 행차하자 용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 한 손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소리가 난다. 이 대나무도 합쳐야 소리가 난다." 신문왕은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나라의 모든 근심거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피리의 이름을 만파식적이라고 불렀다. 만파식적의 전설을 흠돌의 난으로 대표되는 진골과 가야계의 대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문무왕과 김유신은 두 세력이 공존해야 신라가 살 수 있다고 훈계했고 신문왕이 그 뜻을 받아 화합책을 펼친 것을 은유했다는 것이다.
기록을 보면, 오랜 세월 경주에 보관되어 전해지던 만파식적은 조선 세조대에 왕실 창고로 옮겨졌는데, 그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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