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지리학자 해퍼드 매킨더(1861-1947)는 오늘날 서방의 지정전략과 지정학의 뼈대를 구축한 사람이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를 분리해 사고하던 당시의 인식을 깨고 유럽과 아시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유라시아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라시아의 역사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투쟁사로 규정했다. 유럽은 유라시아 내륙에서 발원한 초원 유목세력 침략에 맞선 투쟁의 산물이고 그 과정에서 서유럽 국가들은 지정적 위치에 바탕해 해양세력으로 성장해, 세계 패권을 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패권은 영원하지 않다. 해양세력이 패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축(심장부)을 장악하는 패권국가의 형성을 저지해야 한다가 그의 논지였다.
그는 세계를 3대 구역으로 나누었다. 중심축 지역(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내부 혹은 주변 초승달 지역(유라시아 연안), 외부 혹은 섬 초승달 지역(섬나라: 미국, 일본, 영국 등)이다. 중심축을 장악한 국가는 내륙의 자원을 통제해서 새로운 힘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힘을 주변 초승달 지역에 투사할 것이니 해양세력은 중심축 국가가 연안지대에 힘을 투사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매킨더의 이런 논리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소련과 중국 봉쇄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매킨더가 대륙세력의 후보로 꼽은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었다. 특히 중국을 우려했는데 "이는 중국인들이 대륙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해안지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이점은 중심축 지역의 러시아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대륙 강대국이지만 해안은 얼음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많은 양질의 항구를 가진 1만 5,000여 킬로미터의 온화한 해안선 덕택에 대륙 강대국이자 해양 강대국이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04년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그런 중국은 "세계 평화에 황화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15인치(380밀리미터) 강우선(출처: http://blog.daum.net/zhy5532/15971119)
중국은 지리적으로나 지정적으로나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중원(내지)으로 불리는 한족의 전통적 거주 지역(동남방)이다. 다른 하나는 변경(외지)으로 불리는 만주, 내몽골과 외몽골,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 중원을 둘러싼 완충지대(서북방)다. 두 지역은 15인치(380밀리미터) 강우선으로 구분된다. 중국 인구의 압도적 다수는 이 강우선 동.남쪽에 거주한다. 중원은 강과 비가 풍부한 곳으로 농부와 상인의 땅이었다. 변경의 비한족 완충지대는 유목민과 기마민족의 땅이었다. 이 서북방의 초원유목민족이 남하해 한족화되고 한족은 동남방으로 팽창하는 과정이 중국의 팽창 역사이자 지정학의 역사다.
중국 인구는 현재 세계 인구의 23%에 달하나, 중국 경작지는 세계 경작지의 7%에 불과하다. 경작지 1평방마일당 2,000명(1제곱키로미터당 775명)의 과밀인구가 몰려 살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인구압과 경작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영토 확장에 나섰고, 현재는 경제 성장에 따른 자원과 시장 확보를 위해 확장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현상유지 세력이 아니다. 이는 근대로 올수록 동남방의 지정 도전과 그 안보가 중국에게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지리 조건을 바탕으로 주변 세력에 대응해온 중국에게는 세 가지 당위적 지정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는 중국의 3대 지정 전략이기도 하다.
첫째, 한족 거주 지역인 중원의 내부 통일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티베트, 신장위구르, 내몽골, 만주라는 완충지대를 통제해야 한다.
셋째, 연안지대를 외국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해야 한다.
현재 중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3대 지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중국 공산당은 중원과 한족을 강력히 응집시켰다. 고대로부터 받아오던 외부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적절히 제어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까지 중국을 가장 위협했던 서북방으로부터 안보위협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위로 떨어진 상태다. 이는 초원유목세력이 소멸하고 그 대체세력이던 러시아마저 소련의 붕괴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들어 정치,경제,군사안보 측면에서 중요성이 커진 동남 연안부는 중국의 중심 번영축으로서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 서북방의 안보위협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중국은 동남 연안지대를 통한 해양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이 대륙세력의 패자가 되어 대륙의 자원을 독점하고 1만 오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동남 해안을 통해 해양으로 진출한다면 해양세력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륙세력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중국의 진출과 팽창은 현재 서출북화 동립남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서쪽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는 화해하는 한편, 동쪽에서 입지를 다지고 남쪽으로 내려가려는 전략이다. 즉 북쪽의 러시아와 화해하고, 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송유관과 도로를 건설해 진출하고, 동쪽의 난사군도 등 동.남중국해 섬들의 영유권과 해로를 확보하고, 남쪽으로는 미얀마 등을 통해 남하해 인도양으로 직접 연결하려는 움직임이다. 시진핑 취임후 서출북화 동립남하는 일대일로라는 대형 프로젝트로 구체화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내륙과 해양에서 새로운 에너지, 교역, 수송 사회간접시설 구축을 목표로 하는 현대판 실크로드 프로젝트다.
중원을 견제하던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지대가 허약하고 혼란한 상태에서, 중국의 부상은 새로운 지정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해양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해양력을 갖출 능력과 이해관계를 가진 중국의 부상은 태평양을 포함한 전 세계 대양에서 미국의 해상 패권을 위협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는 독일이나 소련의 부상과는 전혀 다른 과제를 미국에 안겨주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압도적인 패권국을 저지하려는 미국은 중국의 진출을 막는 포위 전략을 2010년대 이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은 일단 중국 동남 연안 봉쇄에 집중해 , 2010년부터 동남아국가들을 묶어 중국에 대항하게 했다. 이어 2017년 이후부터는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연대하는 반중국 포위블럭을 결성하고 있다. 또 대중 아시아태평양 방위선을 재정비하고 있는데, 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으로 연결된 방어선에 이어 그 후방에 일본-괌-호주로 이어지는 방위선을 중첩해 설정하고 있다. 이에 중국도 이 방위선을 역이용해 자신들의 세력권을 규정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반접근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제1열도선(일본-오키나와-대만-필리핀-남중국해)과 제2열도선(일본-괌-뉴기니)이 중국이 설정한 세력권이다.
중국의 진출과 팽창, 미국의 포위와 공세는 유라시아 대륙 연안과 오지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이 마찰음이 대륙의 주변, 그리고 중심부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동-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영토분쟁과 주변 수역에서 잦아지는 대규모 군사훈련이 그 징표다. 남방 해양세력인 한-미-일 동맹과 북방 대륙세력인 북-중-러 연대가 부딪치는 한반도 주변도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발췌 요약)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한겨레출판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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