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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 아미타여래상과 미륵보살상에 관한 이야기 3편

정암님 2019. 3. 25. 12:06

    

감산사 미륵보살 입상



미륵보살 입상의 명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개원 7년 기미년(성덕왕 18, 719년) 2월 15일에 중아찬 김지성은 받들어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 일길찬과 돌아가신 어머니 관초리 부인을 위하여 감산사와 석조아미타상 1구와 석조미륵상 1구를 삼가 만든다...


김지성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미륵보살상을 조성했다. 미륵보살은 부처가 죽은 후 56억 7천만년 후에 나타나는 미래불이다. 그때까지 미륵보살은 도솔천에서 보살의 모습으로 수행한다. 그래서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미륵은 부처와 보살, 두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이 상은 먼저 삼굴자세가 눈에 들어온다. 삼굴자세(유족자세)란 몸이 세번(무릎,허리,목) 꺽어진 듯 보이는 자세로 자연스러움이 우러나게 하고 딱딱하고 밋밋한 느낌을 사라지게 만든다. 중국 양나라 때 최초로 나타나 당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다. 당나라의 삼굴 자세는 여성스러움이 더해져 관능미와 세속적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과하면 종교적 감동이 퇴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인들은 신체의 뒤틀림을 절제했다. 미륵상은 신라의 문화와 예술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신라인 나름의 미감과 불성으로 균형을 맞추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보살상은 부드러우면서 경건하게 다가온다.


미륵상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하다. 특히 얼굴과 팔에서 풍부한데, 거기에 비례해 본다면, 가슴과 복부는 편편한 편이다. 이 부분이 중국풍인 관능적 비만성을 절제해 종교적 경건함을 유지하려는 신라인의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풍부한 양감에 더해 이국적인 화려한 장신구가 이 보살상의 조형적 특징이다. 머리에는 통일신라시대에 흔히 보이는 삼면관 형태의 화려한 높은 관을 쓰고 목에는 2중의 목걸이가 걸려있고, 양쪽 팔에는 팔찌를 착용하고, 가슴과 팔에 걸친 천의는 아래로 늘어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왼팔 아래로 길게 내려와 오른쪽 다리 뒤로 들어가는 구슬띠는 사괘斜掛라고 부르는데 중국을 건너뛰어 서역에서 바로들어온 표현 형식이다. 이처럼 감산사 미륵보살상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던 풍만하고 관능적이며 화려한 장신구를 걸친 보살상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이 미륵상은 통상적인 미륵상과 달리 서있는 자세이며 보관에 화불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도상이다.


                                                                        보관의 화불

이 화불때문에 조상기에 미륵보살이라는 언급이 없었다면 관음보살로 생각할 정도로 미륵상에 화불이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사례다. 하지만 중국에는 화불을 이고있는 미륵상들이 있다. 미륵상생경을 보면 미륵보살의 보관에 화불이 있다했고 그에 따라 북위왕조에서 만든 상생미륵보살의 보관에는 화불이 새겨져 있다.

<삼국유사>에는 금당의 주존이 미륵상이라고 되어 있어 사찰 내 미륵보살상의 비중은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1.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최완수 지음/ 대원사

2. 다큐멘터리 일제시대/ 이태영 지음/ 휴머니스트

3. 감산사 아미타여래상과 미륵보살상/ 허형욱 지음/ 박물관 역사문화교실/ 2019.2.20

4. 미디어 조계사/http://news.jogyesa.kr/news/articleView.html?idxno=6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