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우리가 모르는 ETF의 치명적 약점

정암님 2019. 12. 12. 17:27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와 저금리로 유동성장세가 이어지자, 공모펀드의 수익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공모펀드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빈번한 환매요구에 응해야 하기 때문에 유동성이 높은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동성이 높은 우량 회사채나 국채의 금리가 지속해서 하락하니 현실적으로 펀드 수익률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액티브 펀드 위주로 운용하던 뱅가드, 바클레이즈 등과 같은 초대형 운용사들은 시장이 유동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파악하여 발 빠르게 ETF펀드 위주로 공모 펀드의 상품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저 지수를 추종하는, 즉 시장 수익률을 따르는 패시브 펀드들이 주류가 된 것이다.


기존의 액티브 펀드들은 운용 전략을 세우고 종목을 발굴해서 시장 수익률 이상을 추구했다. 그런데 ETF펀드는 추종 지수가 개발되면

시장 변화에 따라 정해진 종목을 언제 사고팔지가 자동적으로 결정됐다. 펀드 운용역이 개입할 여지가 축소된 것이다. 유동성 장세로 변동성이 작은 장이 장기간 지속되자 이런 패시브 펀드들의 실적이 액티브 펀드들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저금리 시대에 수익률도 액티브 펀드에 못지않은데 수수료까지 훨씬 낮은 패시브 펀드로 공모펀드 시장의 자금이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지수의 변화를 따라 종목을 매수, 매도하는 패시브 펀드는 직관적으로 전략을 이해하기 쉽고 사람의 판단력이 개입할 여지가 적으니 시장 수익률을 크게 상회할 수도 없지만 그만큼 시장 수익률을 크게 밑돌지도 않는다. 그런데 만약 이들 패시브 펀드가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래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장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지수는 단지 그 지수를 구성하는 개별 종목들을 더 높은 가격에 거래한 사람들이 있으면 상승하고 낮은 가격에 거래한 사람이 있으면 하락하는 일종의 거래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더 이상 그 개별 종목들을 살 사람이 없다면? 팔겠다는 사람만 남아있으니 거래는 더 낮은 가격으로 이뤄질 것이고 지수는 하락할 것이다. 지수가 하락하면 패시브 펀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증가할 것이고, 매수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환매 요청은 거래 가격을 급하게 하락시킬 것이다. 이것이 다시 지수를 하락시키고, 그것이 다시 환매 요구를 증가시키는 양의 되먹임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액티브 펀드들까지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다. 많은 액티브 펀드들이 리스크 패리티 전략을 기반으로 포트폴리오 운용을 한다. 리스크 패리티 전략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자산 종류들의 리스크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리스크 대비 성과가 좋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짜는운용 전략이다. 즉 채권의 리스크가 커지면 채권 비중을 줄이고, 주식의 리스크가 커지면 주식 비중을 줄이는 등의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통해 전체 자산간 리스크 배분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패시브 펀드들의 과매도에 의해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증가하는 상황이 왔다고 가정해 보자. 이 과정은 순전히 패시브 펀드가 시장을 주도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만, 일단 과매도 국면이 되면 리스크 패리티 전략에 기초한 액티브 펀드들은 주식의 변동성이 커졌으므로 주식 비중을 줄여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매물이 추가된다. 그 아수라장이 상상이 되는가?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전략은 근본적으로 돈이 만들어 낸 장세에 적합한 전략이다. 장기간 이어진 돈이 만든 장세는 유동성 공급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동안에는 패시브 펀드가 액티브 펀드를 대체하며 성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과거에는 감기몸살 정도로 끝났을  유동성 감소 신호에도 이제 시장은 경련에 가까운 반응을 하고 있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발췌 요약)

1. 달러 없는 세계/  이하경 지음/ 바른북스/ 2019년 10월 초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