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에 가장 나쁜 덕목은 탐욕이었다. 탐욕은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죄악을 짓게 만들었다. 따라
서 독실한 자들은 탐욕을 멀리하는 금욕적 생활을 했으며, 가난은 이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하지만
시대가 바뀌자, 게으름이 가장 비난받는 덕목이 되었고, 가난은 게으름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가치관이 변했다. 그 사이에는 자본주의의 태동이, 그것을 밀어부친 피와 공포가 있었다.
자본가들은 근면성실한 사람들을 원했다.그래야 많은 이익을 얻을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치
관과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변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시대배경이 필요했고, 그 성과가 탁월하
다면, 그 것을 모방하려는 자들에 의해 빠르게 보편화 될것이다. 게으름은 이런 과정을 거쳐 근대이
후 사회에서 가장 비난받는 덕목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들은 근면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쫓기듯
살고 있다.
16세기. 영국에서 양모산업이 호황을 이어가자, 양털가격이 급등 하였다. 지주들은 소작을 주는것
보다는 양을 방목하는것이 더 이익이라는 것을 알고, 소작농들을 몰아내고 양들을 농지에 방목하였
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대법관이었던 토마스 모어가 이것을 보고 외친 말이다.농지에서 밀려
난 농민들은 가진 것이 없었다.그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공장주들은 희색이 만면하였다.
노동자들이 부족한 판이었는데, 전국에서 농민들이 몰려드니 말이다. 하지만 공장의 노동환경은
살인적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을 공장에서 힘들게 일했지만, 가족들을 먹이지 못할 정
도로 보수가 열악했다. 차라리 구걸하는것이 나았다. 일거리와 고향을 잃고 도시로 흘러든 농민들
은 급속히 거지와 부랑아들이 되어갔다.
피의 법률이 제정되었다. 1530년, 헨리8세는 거지면허를 못받는 건장한 자들이, 구걸을 하다 두
번 체포되면 귀를 자르고, 세번 체포되면 목을 베는 법령을 공포했다.그의 재위기간동안 72000명
이 이 죄목으로 처형당했고 엘리자베스여왕시절에도 매년 300-400명이 죽어갔다.
거지들은 공포에 질렸다 .살아야 했다. 그들은 공장주들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렸고,댓가로 16-19
시간에 이르는 중노동과 가족들 입에 간신히 풀칠만 할수 있는 저임금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해
야만 했다. 게으른 자들과 반항적인 자들은 해고되었다. 해고는 곧 죽음이었고, 그 빈자리에 들어
올려고 아우성치는 자들은 넘쳐났다.
이렇게 근면의 가치관은 자본주의 사회에 뚜렷하게 박히게 되었다. 그 뒤에는 피와 공포의 강제가
있었다.
'역사 > 종교,철학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살사상의 종교적 의미 (0) | 2014.01.23 |
---|---|
유교(유가)와 여러사상들의 충돌점: 유교의 대략적 모습은? (0) | 2013.09.08 |
[스크랩] 성학십도 (0) | 2013.05.25 |
동양사상사 공부...어떤 책을 보는것이 좋을까? (0) | 2013.02.05 |
책을 읽고)정신의학의 역사 :정신병은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가? (0) | 2010.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