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서평)

책을 읽고)사찰의 상징세계

정암님 2013. 9. 21. 14:02

                                                        (100개의 문답으로 풀어낸) 사찰의 상징세계 세트

사찰의 상징세계(상,하) /자현 지음 /불광출판사 /320 페이지 /2012년 초판인쇄

 

절집은 상징과 장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입구인 일주문에서 구석진 곳에 위치한 조그만 전각까지

절집은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걸어왔다. 하지만 소통이란

말하는자와 듣는자 사이에 뜻이 통해야 일어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스쳐서 공허하게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우리는 절집에 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잠시 생각에 잠겨보지만 우리는 여전히

낯선 자일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 줄 해설가가 늘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절집의 중들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

 

나는 오랫동안 그들과 대화를 할려고 노력해 왔다. 절집의 상징과 장엄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

지, 그들은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해 왔는지를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 고유의 사상과, 그것이 이

방을 떠돌며 몸에 새겼던 아름답지 않은 역사까지 말이다.

 

시중에는 불교의 상징과 장엄을 설명해주는 책자들이 적지않게 쌓여 있었다. 20여년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국에 답사붐이 일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오천년이라고

하지만 오랜 세월만큼이나 많은 유적,유물들이 소실되고, 남은 것들중의 상당수는 불교문화재였다.

 

종교문화재는 그 의미와 흐름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볼수 있다. 하지만 얼히고 설킨 이야기가 방대하

고, 깊게 가려면 불교신도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불교사상과 마주쳐야 한다. 이를 적절히 끊어

주면서, 유물유적을 입체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설명이 필요하지만, 쉽게 마주치기가 어렵다.

 

 안내자가 있는 답사를 가더라도, 그 짧은 시간안에 유물,유적에 대한 기본 설명만 하기에도 벅차고, 

해설자의 실력이 둘쭉날쭉이며, 그 설명 또한 쉽게 잊혀진다.

우리가 그 유물,유적에 시간적,공간적으로 체계를 만들어 주지 않는한, 그 설명을 기억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절집의 상징과 장엄에 대한 설명 책자들이 여러 권 출판되었고, 나도 적지않게 읽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단편적 설명일 뿐이다. 어디서나 들을수 있는 그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100개의 문답형식으로 사찰의 상징과 장엄에 대한 해설을 풀어가지만, 시간

적 공간적으로 짜임새있게 이야기를 구사하여 우리에게 입체적 조망을 안겨준다.

 

예를 들어보자. 34편을 보면 삼성각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다른책들은 그저 치성광여래와 독성,산신

을 모신 전각이라고 풀이하고 심드렁하게 각 신들의 구별법을 가르켜준다. 반면 이 책은 이렇게 설명

한다.

 

...삼성이란 세 명의 성인을 의미하는데..산신이나 용왕같은 신격이 들어간다는 것은 삼성이란 의미

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통도사 삼성각에는 한쪽에 지공,나옹,무학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이들은

여말선초 불교계를 주도한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이다...때문에 조선의 절집에 이들을 모신 삼성각이

라는 조사전같은 사당이 건립된 것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휴정의 세력이 급성장하게 되

고, 휴정계통에서 여러 법맥의 단일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때 나옹보다 보우를 선택하게 되면서 삼화

상의 입지가 흔들리고, 그로 인해 점차 삼성각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오늘날 조계종이 중천조로 보

를 주장하는 것도 이런 휴정계통의 역활덕분이다. 삼성각에서 삼화상이 밀려나자, 이를 대체하는 신

앙체계가 들어오게 된다. 그것이  중앙아시아와 도교의 북극성,칠성신앙,신선신앙 그리고 산신과 용

왕이라는 우리의 토속신앙과 인도의 전통신앙인 것이다. 삼성각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세성인의 집

이라는 본래의미와는 다른 신앙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

 

어떤가? 매우 입체적이지 않은가..비록 불교사상의 복잡성과 책의 두께때문에 깊은 곳까지 나가지 않

았지만, 이정도 설명만 해도 다른 책자들을 압도한다. 또 우리의 상식을 뒤업는 내용도 많다.

 

멀리서 기둥을 바라볼 경우 기둥이 안쪽으로 휘어져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긴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배흘림기둥을 사용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부석사에 가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쓰다듬곤

한다. 그런데 배흘림기둥의 시각보정효과는, 파르테논신전처럼 기둥사이가 텅비어 있는 개방형 건축

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둥사이를 벽으로 막아버린 한국건축에서는  그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배흘림기둥을 왜 사용했을까? 모를 일이다. 단지 먼 옛날에  멋드러진 선진문화라서 모방했지,

기능을 구현하기위해 도입한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갑자기 저자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저자 자현은 동국대 철학과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미술사학과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동국대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으며 같은 학교 인문학부와 불교학부,미술사학과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상대와 대화를 하려면,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 부분에 있어서, 가장

빼어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절집의 상징과 장엄의 의미를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 혹은 답사 입문자들에

게 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