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서평)

[스크랩] 「정의란 무엇인가」 현상을 다시 생각해보면

정암님 2014. 11. 26. 13:18



2010년에 한국을 뜨겁게 달군 책이 하나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원제: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라는 책이다. 이 책은 인문학 서적의 불모지 한국에서 무려 130만부를 넘게 판매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0만부 정도가 팔렸고, 인문학 서적이 매우 잘 팔리는 일본에서도 엄청난 베스트셀러였음에도 60만부가 팔리는데 그쳤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130만부나 팔리게 되었을까? 이런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을 쏟아냈다. 대게 그들의 분석은 이렇다.


"이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몇개만 링크를 해보자.


우리가 유독 '정의란 무엇인가'에 열광한 이유: http://blogsabo.ahnlab.com/1276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현상을 말한다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vv23&logNo=120176459269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새길 점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malipres&folder=15&list_id=12954840

정의 열풍을 불러온 책, 《정의란 무엇인가》 : http://publishingjournal.co.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mba1&wr_id=6&page=6


어느 리뷰를 봐도 이 책이 잘 팔린 이유를 우리 사회의 정의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분석을 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이 책이 잘 팔린 진짜 이유는 '인터리어 소품으로 좋기 때문에'라는게 나의 분석이다.


먼저 우리는 문제의 책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독자 스스로가 답을 찾게 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질문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정치철학에 대한 상당한 기초지식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이 책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초지식을 요구하는 책으로 매우 어려운 인문서적이다. 어지간한 지식인도 이 책을 한꺼번에 수십페이지씩 읽는게 힘들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책의 단락이 짧게 짧게 끊어지는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큰 단락 안에 있는 작은 단락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십페이지 전에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현재 작가가 진행중인 논리 전개를 이해할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무나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그럼 대한민국에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를 추론해보자.

이것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로 OECD가 발표한 '실질문맹률'과 '고급문서의 해독능력'이라는 것이 있다. 기사를 검색해보면 2005년에 발표한 자료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 실질문맹률 OECD 바닥권: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0407010103270780020 )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한국의 실질문맹률은 OECD의 최상위권이고, 문서문해 단계별 백분율에 있어서 고급문서인 4/5단계 문서 해독이 가능한 인구는 전체의 2.4%에 불과하다.


OECD에서 사용한 IALS 통계에서 나누는 문서 해독능력의 레벨은 다음과 같다.

1단계 : 의약품의 설명에서 나타난 정보로부터 아이에게 투약할 약의 양을 정확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수준

2단계 : 일상적인 문해능력이 요구되는 일에 가까스로 기술을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으나 새로운 요구에 부딪쳤을 때는 문해능력이 부족

3단계 : 복잡한 일과 일상에서 요구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 높은 문해수준에서 요구되는 여러 정보를 통합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

4·5단계 : 고도의 정보처리 및 기술 능력을 구사


그러니까 1단계는 '처방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실질적으로 '문맹'으로 분류한다. 한국에는 이런 사람이 2005년 기준으로 38%나 있다. 2단계는 '단순한 내용의 문서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2005년 기준으로 37.8%나 된다. 3단계는 다소 복잡한 문서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인데, 이 정도 단계로는 마이클 샌델의 책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무리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도의 정보처리 및 기술 능력'을 요구하는 4단계 이상의 문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9년전 조사이지만 이러한 지수가 9년만에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그냥 2.4%를 가지고 계산해보겠다. 대한민국 인구를 대략 5000만명으로 잡고 2.4%를 계산해보면 120만명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는 2005년 기준으로 여기서 예를 든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정도의 고급문서를 해독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 대략 120만명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읽을 수는 있다는 선에서 생각하여 3단계까지 계산한다고 해도 5000만명의 23.3%, 즉 1165만명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되겠다. 그럼 단순히 계산해보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고급문서를 해독할 능력을 지닌 사람의 총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산 책이고, 한국에서 이 정도 책을 읽고 최소한의 독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 9명 중 1명이 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참고로 일본은 이 조사에서 4단계 이상의 문서 해독 능력자의 비율이 5%였다. 이걸 일본 인구 1억2000만에 대입해보면 600만명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이들 중 60만명이 책을 샀다고 하는 것도 매우 비현실적이다. 실제로는 일본에서도 한국보다 비율만 조금 적을 뿐 읽지도 못하면서 산 사람이 다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수치는 미국에서 10만부가 팔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책이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고급 문서 해독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을 구매한 상당수의 독자가 실제로는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이 책이 많이 팔린 이유는 한국적인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과 그 당시의 가장 트렌디한 인문서적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여러 베스트셀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가장 비슷한 사례가 2007년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시크릿」이라는 책이다. 이 「시크릿」이라는 책은 인간의 긍정적인 믿음이 뇌파에 작용해서 우주의 흐름을 바꾼다는 샤머니즘적인 내용을 다룬 책이다. 진지하게 논할 가치가 없는 책이고, 베스트셀러가 될 가치도 없는 책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소개되면서 폭발적으로 팔려나갔고, 이것이 한국에서도 유효해서 날개돋힌듯 팔려나갔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서는 조금만 검색해봐도 원색적인 비판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냐면 「시크릿」은 책의 내용이 형편없는 이상으로 이해하기도 쉽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이 책의 논증이 완벽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의 영문 제목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로 번역해보자면 『정의: 무엇을 하는 것이 정의로운가?』정도인데, 한국판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로 나왔다. 일본판은 제목이 『これからの「正義」の話をしよう』인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앞으로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이다.  제목의 번역은 일본어판의 번역이 훨씬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그 제목이 책의 내용에 훨씬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상황을 설정해 그에 대한 여러 해석을 놓고 소크라테스식 문답을 유도하는 내용인 만큼 차라리 일본어판 제목이 더 책 내용에 부합한다. 

출처 : 아까짱 블로그
글쓴이 : 김상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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