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는 태양숭배신앙을 지닌, 북방의 선진문화를 가진 민족이 남하하여 만주와 한반도에 거주
하는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종족과 만나게 되고, 이중 곰족은 복속되고 호랑이족과는 충돌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곰족의 복속은 곰이 사람되기를 바라고, 결국 수용적인 여성이 되어 남성인 환웅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두문화의 결합으로 탄생한 것이 단군이며 우리민족의 조상이 된다.
단군은 제사장을 의미한다. 그는 태양숭배를 관장한다. 우리민족과 연관된 배달민족,백의민족,박
달나무,백악산,조선등의단어들이 모두 태양과 관련된 밝다의 의미를 취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이다.
신화를 해석하면, 태양을 숭배하는 제정일치사회가 1500여년 정도 유지되다가, 이후 단군은 산신
신앙으로 변모한다.
산신도 출처:문화재청
산신도를 보면 산신은 신선과 모습이 비슷하다. 신선하면 대개 중국의 도교를 떠올리지만, 도교와
신선사상은 그 기원이 다르다. 도교는 후한말 장릉이 사천에서 노자,장자의 도가사상과 토속신앙
,그리고 신선사상을 섞어 만들어낸 것이지만, 신선은 선진시대에서부터 기원하는 산동과 발해만
부근의 문화이다. 즉 도교와 신선사상은 지리적으로는 중국의 서쪽과 동쪽으로 완전히 떨어지고,
시간적으로는 천여년이상 차이가 나는 다른 문화였다. 그것을 장릉이 끌어다 섞어 도교를 만든 것
이다.
대부분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도가와 도교는 다르다. 노자,장자로 대표되는 도가는 일반적으로 인
간의 절대자유를 주장하지만, 도교는 오직 불로장생만을 추구한다, 그 상징이 신선이다.
신선은 기실 우리 고대문화와 관련된다. 이는 신선이 산다는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이 발해만이
나 한반도로 비정되는것이나,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국선등을 보면 알수 있다.
또 선(仙)이라는 글자도 사람이 산에 기대는 모양이니, 이는 산신과 통하는 가치로 그 기원은 단군
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신선,산신,산악숭배사상은 한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이라고 하겠다.
그럼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는 그후 어찌 되었을까?
곰과 호랑이는 환웅에게서, 인간이 되려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마
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호랑이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곰만 여자가 된다.
하지만 이 조건은 처음부터 호랑이에게 불리한 불평등 계약이었다. 곰은 잡식성 동물이다. 따라서
곰은 쑥과 마늘로 허기를 달랠수 있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육식성 동물이다. 그는 애초부터 쑥과 마
늘을 먹을수 없었다.결국 그는 환웅의 불평등계약에 어설프게 서명했다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동
굴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혹자는 호랑이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곰을 잡아먹을수 있었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
하고 조용히 동굴을 떠났다며 그를 호탕하고 성격좋은 호랑이하고 칭송한다.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호랑이의 장점은 기동력이다. 빠른 기동력으로 적의 약점을 순식간에 들이
치는 것이 그의 필승전략이다. 하지만 장소는 협소한 동굴이다. 이런 곳에서는 기동력을 발휘할수
가 없다. 곰은 머리가 민첩하고 힘이 장사다. 좁은 동굴에서 느려진 호랑이는 곰의 한방에 골로 갈
수 있다. 곰이나 호랑이나 서로 우세를 장담할수 없는것이다.
호랑이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굴밖으로 나가면 위험부담없는 먹거리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굳이
위험을 무릎쓰고 동굴안에서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동굴을 뛰쳐나가면 환웅과의 약속은 파기되는 것이다. 간교한 환웅은 호랑이가 결코 들어줄수 없는
조건을 요구했다. 어짜피 그길밖에 없다면, 무릎꿇고 사는 이,차라리 서서 싸우다 죽으리라....
호랑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후 호랑이가 어떻게 싸워갔는지를 알려주는 단서는 없다. 다만 그 결과만은 산신도에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유추할수 있다.
단군은 마지막에 아사달의 산신이 된다. 그런데 절집에 있는 산신도를 보면, 산신은 호랑이를 동반
한 남성으로 나타난다. 단군신화에도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산신은 단군을 상징하
는 것으로 보통 해석한다.
산신도 출처: 문화재청
산신도속의 호랑이는 단군옆에서 위풍당당한 면이 없는 애완용 고양이처럼 아양섞인 모습으로 앉
아 있다. 이 호랑이가 바로 동굴을 뛰쳐나간 그 호랑이다. 복속당한 종족의 슬픈 운명이랄까...
호랑이족는 환웅과 곰족의 연합부대에 패주를 거듭하며 쓰러져 갔을 것이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
은 단군족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로 인해 호랑이는 단군세력의 영향력안으로 흡수된다. 이러한 양
태가 산신도속에 묘사된 단군과 호랑이의 그림이다.
환웅족과 곰족은 부족이 주체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에 단군이란 산신으로 묘사되지만, 호랑이족은
복속된 것이기 때문에 계속 호랑이로 그려진다. 그것은 문명에 대응하는 야만인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족의 기상은 나쁜기운을 몰아내는 벽사도의 호랑이로, 성격급하고 낙천적인 국민성
으로 아직도 면면히 흘러내리고 있다.
참고)
1. 사찰의 상징세계/ 자현 지음/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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