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서원회계자료들을 보면, 서원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통상적인 제례와 교육을 위해 사용했다. 거기에
다 서책, 등유, 장염등 일상적인 비품과 소모품을 구입하고 원임(서원 운영진)들의 삭료,주식비,예물비, 유생들
에게 부의, 타 서원과 향교에 부조, 유회개최에 따른 비용등이 주된 지출항목이었다.
하지만 상당수 서원들의 재정운영은 겨우 현상을 유지할 정도로 빡빡했다. 그런데 여기에 건물을 수리,중건하
거나 문집이라도 간행한다면 많은 비용이 일시에 소요되는 것이기에 서원은 심한 재정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
었다. 이경우 관의 도움을 요청하고 지역유림들에게 기부금을 거두지만 상당액은 서원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형편이 궁한 서원들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답을 매각하고 서원노비를 속량하거나 팔았다. 때로는 환곡을 대
여받고 고리대를 빌리기도 하였다. 또 친분있는 중앙관료들을 내세워 각 고을이나 문중에 도움을 요청하고 향
교나 다른 서원들에게 지원을 구걸하고 백성들에게 금전을 강제로 징수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울러
액외원생이나 원보를 모입하여 서원이 피역의 소굴, 양역폐단의 원인이라는 비난을 받게했다.
서원의 만성적 재정난의 주원인중 하나로 원임들의 방만한 경영과 무책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서원의 운영진들인 원임은 고을 유림들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임기는 보통 1년이며 연임과 중임이 가
능했다. 원임들의 서원경영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낭비와 태만 그리고 책임감의 결여였다.
서원의 부채란 원임들의 음식비용과 사사로운 씀씀이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같은 낭비와 태만
이 재정부족을 야기시켰다. 심지어는 서원의 노비를 사사로이 부리고, 전답을 빌려 경작하면서 소작료를 떼먹
는 자들도 있었다. 서원들은 원임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완의를 거듭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한편으로 서원들은 재정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특수 목적을 위한 별도의 기금을 설치했다. 이들을 별소,별고
라 하였으며 원래의 재정기구인 본소,본고와 운영을 달리하였다. 즉 건물의 중건,전답 매득,문집 간행등 일시
적 필요를 위해 본소외의 별도 자금을 마련하고 따로 고리대등으로 운영하여 별도 회계하였다.
별고의 한 종류에 서원에 모셔진 선현들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것도 있었다. 선현의 후손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서원운영에 관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후손들이 원임을 맡는 것을 금하고 있었지만, 후손들이 원임에 취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서원들 또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고
후손들은 별고를 운영해 재정보조를 해주고 있었다. 이런 관계로 서원에 대한 후손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서원
은 양반사족들의 공동이해를 위한 기구에서 점차 후손들의 기구로 변질되고 있었다. 이는 조선후기 문중서원
들의 난립과 함께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조선후기 서원의 어려운 재정형편은 여러가지 사회적 폐해를 낳았고 이는 서원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그 추락
의 끝에는 대원군의 서원철폐가 있었다.
참고)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지음/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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