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수준, 식생활, 영아 사망률, 기대수준, 보건, 문해율등 여러 기준을 조합해 보았을 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는 세계에서 가장 궁핍한 지역이다. 이는 1만 년전부터 시작된 재난들이 장기간 겹쳐 일어나면서 발생한 결과
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세계의 다른 지역과 명확히 갈라놓았다. 물론 개별적으로 아프리카를 능가하는 재난
에 시달린 지역도 몇몇 있지만, 아프리카를 오늘날의 불리한 위치에 놓은 것처럼 복합적인 재난을 겪은 지역은
없다. 그리고 이는 소득, 질병, 영아사망율, 교육등에 이르는 갖가지 통계에 드러나 있다. 현재 아프리카가 처한
곤경의 원인은 다음 여덟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기후 변화
1만 2천년전 빙하기가 끝나고 현재의 간빙기로 접어들었을 때, 빙하의 바깥쪽 가장자리와 열대 위도 사이에 몰
려 있던 기후 식생지대가 극지대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빙하기동안 유럽은 꽁꽁 얼어있었고, 온난 습윤한 기후가 오늘날의 사하라사막으로 밀려 내려와 숲이 우거지고
개울이 흐르는 지역을 만들었다. 적도 아프리카도 지금보다 상당히 서늘했고 열대우림 대신에 사바나가 펼쳐
져 있었다.
빙하가 물러나고 기후가 온난해지자. 사바나는 열대우림으로 바뀌었고 사하라는 점점 건조해져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에 광활한 사막지대로 변모하며 사하라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거대한 자연장벽이 되었다. 그 결과 사
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주변 문명 지역으로부터 영구적으로 고립되어, 지역적으로 파편화되고 인구변화로 인한
위기에 취약한 지역이 되었다.
2. 생태적 충격
빙하가 물러가고 기후가 온난해지자, 아프리카의 적도기후가 강해졌다. 기후가 강해지면서 온도와 습도가 높아
지고, 울창한 열대우림이 팽창하면서 삼림지대에서 사바나까지 동물이 번성했다. 호수와 늪지가 형성되고 대형
유인원들의 서식지가 확대되었다. 이 때문에 대륙에 남아 있던 이들은 새로운 환경의 도전에 직면했으며, 타 지
역에 비해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더구나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사나워 가축화 시킨 동물
도 호로호로새 하나뿐이었다.
아프리카 적도 저지대의 열기와 습기는 수많은 병원체를 지닌 숙주 동물들을 번성시켰다. 그 결과 말라리아. 황
열병, 수면병, 에이즈같은 질병들이 창궐하여 많은 아프리카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아프리카의 질병은 오
랜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질병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병은 14세기경에, 에이즈는 20
세기 중반 이후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아프리카인들의 건강 상태가 다른 지역에 비해 처지는 현상은 어제오늘
의 일이 아니며 과거 무수한 세대동안 지속된 일이었다. 아프리카의 질병은 세계 다른 지역의 질병에 비해 치료
법이 적극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 설령 치료법이 존재한다해도 아프리카인들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정
도로 가난하다. 이러한 위험과 방치상태의 공존이 사하라 이남 주민들에게 재앙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3. 이슬람으로 인한 분열
14세기경, 사하라 이북지역을 장악한 이슬람은 대상과 배를 통해 사하라 이남지역의 동서로 침투했다. 이후 남
으로 진군하던 이슬람은 아프리카인들의 저항과 기독교 유럽의 간섭으로 주춤하고, 그 결과로 서아프리카의 기
니에서 동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 소말리아-케냐 국경에 이르는 이슬람전선을 형성했다. 이 선을 중심으로 이슬
람화된 아프리카와 기독교 혹은 애니미즘을 믿는 아프리카 사이에서 끝없는 분쟁이 발생하여 수백만 명이 희생
되었다. 결국 이슬람 전선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분열을 강화시켰다. 현재 이 대륙의 분열은
사막과 신앙에 의해 심화된다. 신앙은 두 지역사이를 더욱 갈라놓은 장벽인 동시에 처참한 분쟁의 근원이다.
이슬람전선/ 각나라별 %수치는 해당국가의 이슬람신도 비율
4.노예무역으로 인한 인구 감소
노예제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세계 그 어느 곳의 노예제도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행한 노예무역과는 비교조
차 할 수 없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에로 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붙잡아서 바다 건너로 내다 팔았다.
1700년부터 1810년까지 교역이 이루어진 노예의 수는 1천 2백만 명에서 그 두배이상으로 추정되는데, 그 정확
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18세기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인구는 9천만 명을 넘지 않았을 텐데 팔려간 노예의
수를 1천 5백만으로 가정해도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되는 엄청난 숫자였다.
노예 사냥꾼의 습격과 뒤따른 전투로 지역 전체가 초토화되고, 사람의 목에 현상금을 붙여 아프리카인들이 서
로 반목하게 만들고 종족간 적개심에 불을 지폈다. 수만 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어 버려지고, 농작물은 방치되
고 마을들은 불타거나 황폐화되었다. 사슬에 묶인 아프리카인들의 행렬은 내륙의 공급지로부터 해안의 선박까
지 이어졌으며, 창고에 집어넣어진 이들은 다시는 고향을 보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흘렀음에도, 이 무시무시한 재앙의 흔적은 항구적 상처로 남아 아직도 아프리카의 문화 경관에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5. 식민주의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식민 열강들은 아프리카 지도상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정했다. 그 경계선이 현지 주민
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 결과 어떤 곳에서는 한 종족 집단이 서로 다른 관
할 구역으로 쪼개졌고, 다른 곳에서는 적대 집단들이 한데 묶이기도 했다. 또 목축민들은 이동 경로가 차단되고
물과 초지를 빼앗기기도 했다.
식민화는 착취를 의미하며, 유지수단은 공포와 분열조장이었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콩고의 2천만 주민을
지배하면서 1천만명을 학살했다. 또 식민 열강들은 종족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하면서 서로를 이간질시켜 지배
했다. 그 후유증이 식민지 독립이후 나타나 아프리카를 피로 물들였고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6. 냉전
2차대전후 아프리카에는 식민지에서 독립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위기와 갈등이 생겨났다. 거기에 냉전
을 벌이며 세력 확장을 꾀하던 미국과 소련이 끼어들면서 이런 갈등 중 상당수가 증폭되어 내전으로 치달았다.
소련은 반식민주의를 명분으로 좌파 세력을 지원했고,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 저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 결과 에티오피아에서 앙골라까지 냉전의 대리전이 벌어지며 수십만의 민간인들이 전쟁, 기아, 혼란으로 목숨
을 잃었다. 또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을 지지한다면 독재자들의 폭정도 눈감아 주고 지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인들에게는 해외 식민주의자들을 국내 독재자로 맞바꾼 꼴이 되었다. 안 그래도 세계 다른 곳보다 휠씬
뒤처져 있던 아프리카는 냉전의 와중에서 더욱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7. 세계화
세계화는 국제 무역장벽을 해체하고 상거래를 활성화하여 경제를 부흥시키고, 정치,사회,문화적 교류를 촉진하
는 과정이다. 하지만 세계화는 부정적 면도 강하다. 선진국은 세계화가 유리하지만, 관세와 무역장벽으로 허약한
경제를 간신히 지탱하는 빈곤 국가들은 세계화를 받아들일 경우 더욱 뒤처지게 된다.
세계화는 아프리카의 외부에서 비롯되어 아프리카의 내부 조건과 대외적 위상에 깊고 장기적인 충격을 끼치는
또 다른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아프리카에 침투한 세계화는 부패를 부추기고 연약한 문화와 생태계를 위협하는
부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뒤 세계화에 노출된 남아공은 불과 10년만에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이는 어느정도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세계화는 힘의 대결이며 아프리카는 세계무대에
서 힘이라는 자산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이 누적된 결과는 아프리카에 또다른
무서운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
8. 리더십의 실패
1960년대 아프리카의 독립운동이 활발했을 때, 거기에는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많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국부에서 독재자로 이어지는 길은 멀지 않았다. 권력을 차지한 뒤 이들은 쉽게 부패했고 국민을 억압했
다. 내전과 쿠데타가 연이어 일어났고 경제는 파탄되고 국민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리더십은 실패했고, 국제 사회 역시 이들을 저버렸다. 유럽과 미, 소는 자신들을 지지
하는 독재자들을 묵인했다. 혹은 자신들의 이익과 무관한 국가에서 발생한 대량 살육은 방관했다.
비록 미미하게 개선의 징후가 보이고 있지만. 아프리카가 반세기에 걸친 광범위한 리더십 실패로 입은 타격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프리카 지도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첨가) 최근 서구 일부 언론들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아프리카의 아홉 번째 재앙이라
고 공격하고 있다.
참고)
1. 왜 지금 지리학인가/ 하름 데 블레이/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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