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후반, 조선에서 살았던 인물들 중에서 가장 개혁적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이이를 꼽아야 한다.
친구 성혼 말대로 "세상에 드문 고명한 재주를 가진" 이이는 조정에 출사하여 시종 개혁을 부르짖었고, 거기에
따른 많은 저작을 남겼다. 허나 초반은 선조의 냉대로, 후반은 신뢰했던 이발, 김우옹, 유성룡같은 동인 핵심들
의 외면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채 49세의 한창 나이에 죽고 말았다.
생애 마지막 3년 남짓 기간은 이탕개의 난으로 위기를 느낀 선조가 신임을 실어 주었지만, 신진사림이 주축이
된 동인들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발도 전진할 수 없었다. 이런 양상이 빚어진 원인을 모두 이이에게 물을 수
는 없지만, 이이 개인 성향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이이에게는 평생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 중 한명을 뽑아야 한다면 성혼을 꼽아야 한
다. 두사람은 20세 무렵에 만나 평생을 함께 했다. 정치적 부침과 시련도 함께 겪었다. 이이 사후, 성혼은 서인
을 이끌었으며 이이의 문집 초안을 만들었다. 죽은 후, 이이와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고 같이 출향되었다가 다
시 함께 들어가는 영욕을 겪었다. 두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한몸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이의 탁월함에 매료되었던 성혼은 이이의 단점에 대해서도 분명히 인식했다.
그가 말한 이이의 단점을 들어보자.
"스스로 고명함을 자부하여 남들이 자신만 못하다고 여기지만, 끝내 그 잘못을 깨달을 날이 있을 것이다."
"관직이 제수되어도 당연한 일로 여기며, 또 운명과 분수가 본디 정해져 있다는 이치를 말하곤 하였다."
"재주가 트였기 때문에 경솔한 병통이 있어 침착하고 치밀한 기풍이 부족하다. 성품이 분명하고 곧으며 우활
하고 성실하기 때문에 절대로 외모를 꾸며 사람들의 마음에 맞추려는 태도가 없었다. 뜻이 커서 하찮은 일에
대해서는소략하고 자신감이 넘쳐 세속을 따르지 않았다. 또 견고하게 응집된 역량이 부족하여 남이 모함하고
선동하는 말에 동요되곤 했다."
참고)
1.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이정철 지음/ 너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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