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호프 자런 저 김희정 역/ 알마 간
두려워하지 마라. 이책은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수식이 춤추는 과학책이 아니다.
저자인 호프자런
랩은 실험실이니 랩걸은 여성과학자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 세가지는 자런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자런은 지구 물리학을 전공했고 나름의 업적을 쌓아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 녀는 학위를 세 개 땃고, 직장을 여섯 번 옮겼으며, 4개국에서 살았고, 중고차 여덟 대를 갈아치우고, 적어도 4만 킬로를 운전했고, 개 한마리가 영면하는 것을 지켜봤고, 약 6만 5000개에 달하는 탄소 안정적 동위원소를 측정해냈다. 실험실 운영비와 팀원인 빌의 월급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프로젝트을 구상하고 그 자금을 구걸하러 다녔고, 연구 성과를 내고 학계에 이름도 알려야 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낯선 여자를 터부시하고 외면하는 남성 과학자들의 어색한 시선을 받으며 협업를 해야했다. 스트레스로 조울증을 앓았고 매일 약을 복용했다. 그 와중에 사랑도 하고 힘든 출산도 하였다.
이 책은 과학계라는 여자들이 흔치 않은 영역에서 생존하고 인생을 가꾸어나갔던 한 여성과학자의 자서전이다. 자서전의 성격상 자기 자랑질로 빠지기 쉬운데, 랩걸은 자신을 도드라지게 하지 않으면서 나무 이야기와 여성 과학자로서의 성장통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얼핏얼핏 글재주가 있다고 자랑하더니 거짓말이 아니다. 번역의 힘인가? 하고 의심도 했지만 영문 저작도 신문들의 서평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니 소질은 타고 났나 보다. 글쓴이는 못하는게 뭐야? 연구면 연구, 글이면 글 모두 빼어나니 평범한 흙수저는 자괴감에 빠진다.
처음에 표지의 식물 그림과 연이어 나오는 나무 이야기에 긴장했던 순간은 어느덧 사라지고 자런이 풀어놓는 소소한 에피소드과 자잘한 웃음 코드에 책장을 거푸 넘기게 된다. 거기에 살면서 채득한 나름의 통찰과 혜안이 촌철살인처럼 등장하고,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푸대접, 남성 과학자들의 여성 연구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 나날이 줄어드는 수목지대에 대한 우려등등이 짧막하게 언급되면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임신과 출산에 따른 고통과 애로점,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 평생 지기이자 실험실 동료인 빌과의 사랑과 우정등도 빠트릴 수 없는 대목이다.
훈훈하다. 읽을 거리도 풍부하고 번역도 매끄럽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어느 부분에서는 미소를 지을 것이다.
잊지 말자. 반드시 무엇인가를 얻어야 겠다는 것을 포기하면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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