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고대를 기병 전술의 암흑기, 중세는 기사들이 활약한 기병 전술의 전성기, 근대는 총포 출현에 따른 기병 전술의 쇠퇴기로 분류한다. 그럼에도 고대의 명장이었던 서양의 알렉산드로스, 한니발, 스키피오는 기병을 주 전력으로 삼아 대승을 거두었고, 동양의 병법서인 <육도삼략>에서는 평지에서는 전차 1대가 보병 80명, 기병 1명은 보병 8명의 몫을 하고, 고르지 못한 지형에서는 전차 1대가 보병 40명, 기병 1명이 보병 4명의 전투력을 발휘하다고 평가하였다. 이처럼 기병의 효율성을 높게 평가했음에도 왜 고대의 전략가들은기병을 군의 주력으로 삼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유럽의 고대 문명은 그리스.로마 문명이다. 그들이 위치한 발칸반도와 이탈리아반도를 보면 핀도스 산맥등 산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의 초원 지대나 러시아의 평원은 기병의 활동에 안성맞춤이자만,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울퉁불퉁한 산이 많으니 자연스레 보병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고대 중국도 황하 유역은 평야 지대라 전차전 중심이었지만. 양자강 유역은 호수와 강이 많고 땅이 고르지 못해 보병 중심이었다.
둘째, 그리스와 로마는 민주정이 발달한 나라였고, 시민들은 군복무를 의무가 아닌 권리로 여겼다. 그런 시민들이 참여한 주된 병과가 보병이다. 말까지 사육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여서, 시민들은 자비로 구입한 갑옷, 투구, 무기를 지니고 중장보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그 댓가로 참정권과 투표권이 주어져서 민주정이 만개할 수 있었다. 군의 주력이었던 보병들은 대체로 귀족출신인 기병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았고, 기병과 유기적 협조 전술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스.로마의 민주정 체제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을 보장해주는 중장보병 중심의 체계를 고수하는 것이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고대에는 등자가 없었다. 등자가 없으면 말을 탈 때 두 무릎으로 말을 죄여가며 버터야 했다. 말을 타는 것만으로도 쉽게 피로해졌을 것이다. 이러니 기병이 중무장을 하거나, 말 위에서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고로 쓸만한 기병이 되려면 말과 인간이 하나가 될 만큼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유목민족이나 정착민족의 부유층 내지 귀족뿐이다. 등자는 732년에 공식 등장한다.
넷째, 기병의 역사가 보병의 역사보다 짧다. 보병의 출현은 전쟁사가 시작된 순간부터지만, 기병은 최초의 초원민족이라 불리는 스키타이인을 정복한 사르마티아인들이 안장과 편자를 발명한 때부터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기원전 10세기 무렵의 말은 지금 보는 것만큼 크지 않고 망아지나 나귀 정도였다. 따라서 인간이 말에 올라타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말 여러 마리를 묶어 전차를 끌게하여 싸우는 전차전 중심이었다. 이후 인간이 품종이 우수한 말들을 교배시킴으로써 사람이 말허리에 올라타도 견딜 수 있는 크고 튼튼한 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위에 사르마티아인들의 안장과 편자가 더해져서 전차보다도 값싸고 운용에도 더욱 효율적인 기병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로써 전차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참고로 셀레우코스 왕조가 로마에 참패한 마그네시아 전투(기원전 190)에서 전차가 사용된 후에 전차는 거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전차는 지휘관이 탑승하거나 개선식등에 사용하는 용도로 몰락했다.
다섯째, 정착민족에게 기병은 곧잘 그 비용이 효용을 초과했기에 기병을 대규모로 육성할 필요가 없었다. 한정된 땅을 말먹이로 쓸 목초지보다 농경지로 만드는 것이 나았다. 굳이 기병이 필요하다면 용병을 고용하거나 동맹국에 의존하면 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대규모 기병대를 운용하던 것들은 아시리아 제국같은 유목민족들뿐이었다.
발췌요약)
1. 세상을 뒤흔든 전투의 역사/ 유필하 지음/ 들녘/ 2018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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