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스섬(출처:위키)
기원전 416년 아테네는 2700명의 중장보병과 300명의 경장보병을 38척의 군선에 태워 멜로스섬으로 보냈다.
멜로스는 군사력도 없고 상업도 성하지 않았으며, 특산물은 흑요석이지만 주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나라였다. 도리스인의 후예로 스파르타와 같은 혈통이지만, 당시 진행 중이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인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에게해의 남단에 있던 이 조그만 섬이 중립을 지킨다고 아테네가 딱히 불편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15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하자, 부담을 느낀 아테네의 동맹국들이 점차 이탈할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나날이 증가하는 전비 역시 골칫거리였다. 이에 아테네는 멜로스섬에 사자를 보내 델로스동맹에 가입할 것과 낙소스같은 대국과 같은 금액인, 막대한 액수의 공납금을 요구하였다. 멜로스인이 거부하자, 아테네는 군대를 보냈고 개전 전에 마지막으로 멜로스 대표는 아테네 진영을 찾아가 협상을 벌였다. 이 대담을 투키디데스는 그의 명저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무려 36장을 할애하여 서술했는데, 그의 서사 중 백미로 꼽을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 되었다. 문장 자체도 명문이지만 강대국에 유린당하는 약소국의 비애를 가감없이 드러내, 자국의 이익을 힘의 논리를 앞세워 관철시키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아테네에게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멜로스는 한순간이라도 자유를 박탈당할 수 없다"며 거부한다.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고 멜로스는 몇 달을 버텼지만, 그들이 열망했던 스파르타 지원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멜로스는 항복했다. 포로는 없었다. 항복한 성인 남자 모두를 그 자리에서 죽였기 때문이다. 도시는 파괴하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로 팔아넘겼다. 토지는 몰수하여 500명의 이주한 아테네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유독 잔인했던 이 처리는 델로스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동맹국들에게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수록된 멜로스 대담의 일부을 읽어보자.
아테네인: 세상의 이치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말이오. 강자와 약자간에는 강자는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고 약자는 어떻게 작은 양보로 위기를 모면하는 가만 문제일 뿐이오.
멜로스인: 여러분이 정의를 도외시하고 득실에 관해서만 논하자고 하니 하는 말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보편적 선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될 것이오. 생사의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이치와 정의에 호소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 호소에 일리가 있다면 도와주어야 하지않겠소. 그것이 여러분에게 큰 이익이 될 것이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훗날 귀국이 몰락했을 때 한 것 이상으로 다른 나라의 가혹한 보복을 받아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날이 올테니 말이오.
아테네인: 설령 우리 제국이 몰락한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소. 스파르타인들처럼 남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정복당하는 것은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니오. 허나 피지배자가 반란을 일으켜 지배자를 타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두려운 것이오....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협상을 통해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고, 그것이 또 여러분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임을 납득시키기 위해서요.
멜로스인: 이해할 수 없소. 당신들이 우리의 지배자가 되어 얻는 이익은 알 수 있소. 하지만 당신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익이 된단 말이오?
아테네인: 여러분은 항복함으로써 커다란 재앙을 면하고, 우리는 여러분을 살육하지 않고 살려둠으로써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오.
멜로스인: 여러분은 정녕 우리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평화와 중립을 유지하는 국가로 남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단 말이오?
아테네인: 용인할 수 없소. 여러분의 원한을 사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소. 오히려 호의를 사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위험하오. 여러분의 호의는 우리가 약하다는 징표로, 여러분의 증오는 우리가 강력하다는 증거로 우리 속국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오.
멜로스인: 귀국과 아무 관련이 없는 우리와, 대부분 귀국의 이주자이거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속국들은 다른 기준으로 다스려야 되지 않겠소?
아테네인: 이치를 말한다면 어느 경우든 내세울 말은 있는 법이오. 사람들은 독립을 지키는 자가 있으면 그자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들을 방치하면 그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오. 따라서 여러분이 우리에게 항복한다면 영토를 넓힌다는 점을 떠나서 우리의 위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오.
멜로스인: 당신들의 논리를 따른다면 현재 적지않은 중립국들이 무어라고 생각하겠소? 그들은 우리의 경우를 보고 언젠가는 자신의 나라에도 아테네인들이 쳐들어올 거라 생각할 것이며, 그리되면 여러분은 그들 전부와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것은 기존의 적국 수를 더 늘리고 그럴 의도가 없던 나라들을 본의아니게 여러분의 적국이 되게끔 강요하는 것이오.
아테네인: 내륙의 나라들은 걱정하지 않소. 자유를 누리는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테니...진정 두려운 것은 여러분처럼 아직도 굴복하지 않는 섬주민이나 복속은 했으나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이오. 이들이야말로 무모한 행동으로 그들 자신과 우리들을 파멸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자들이오.
멜로스인: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배자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 이미 노예가 된 자들은 지배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런 위험을 무릅쓴다면, 우리와 같이 아직 자유인인 사람들이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소. 가만히 있는다면 비겁자라고 경멸을 받을테니 말이오.
아테네인: 아니오. 냉정히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오. 여러분은 대등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체면이나 치욕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이 살아남느냐의 문제이며,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보다 압도적인 강자에게 저항해서는 안되오.
멜로스인: 그러나 승패는 반드시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종종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소. 우리가 항복하면 희망은 모두 사라지지만, 싸우는 동안에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는 법이라오.
아테네인: 희망은 사경에 이르렀을 때 한가닥 위안이 되는 것일뿐...그것도 여력이 있을 때는 희망에 매달리더라도 손해는 보겠지만 파멸까지는 가지 않겠지요. 그러나 수중에 있는 모든 것을 희망에 거는 자는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그래서 희망이 무엇인지 알고 조심할 수 있을 때에는 이미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오. 여러분은 힘이 약하고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 그런 어리석은 지경까지 이르지 말기를 바라오. 또한 인간적 수단으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는데도 궁한 나머지 현실을 보지않고 신탁이니 예언이니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 자들의 어리석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오.
멜로스인: 귀국의 병력과 행운에 필적할 만한 조건을 갖지 않는 한 귀국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잘못이 없고 당신들은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의 가호가 반드시 내릴 것이라고 확신하오. 부족한 병력은 스파르타와의 동맹에 의해 보충될 것이라 믿고 있소. 설혹 특별한 이유가 없다 하더라도 스파르타인들은 같은 혈족인만큼 명예를 위해서라도 우리를 도와줄 것이오. 따라서 우리의 자신감은 여러분이 생각하듯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오.
아테네인: 신의 도움을 말한다면 우리에게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오. 왜냐하면 우리의 주장이나 행위도 인간이 신에 대해 품는 생각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사회의 욕구에 위반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오...신에게서나 인간에게서나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는 법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오. 이 법칙은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이 법칙이 제정되고나서 우리가 처음으로 따르는 것도 아니오. 우리는 이 법칙을 하나의 사실로 물려받았고, 영원히 존속하도록 후세 사람들에게 물려줄 것이오. 우리는 이 법칙에 따라 행동할 뿐이며 당신들이나 다른 어떤 자들이라도 우리와 같은 권력을 갖게 되면 반드시 우리같은 행동을 취할 것이며,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의 도움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오.
참고)
1. 펠로폰네소스전쟁사/ 투키디데스 지음/ 천병희 역/ 숲 간
2.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김진경 지음/ 안티쿠스 간
3. 그리스인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역/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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