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제정치 시사/한반도와 동북아정세

미.중 세력 균형으로 보는 한반도 통일 장정의 난관

정암님 2019. 2. 3. 06:58


1500년대 서방 해양세력이 도래한 이후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소련과 미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완충 지대가 되느냐 교두보가 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려왔다. 열강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 균형의 중심점으로서 완충지대로 충실히 기능하면, 한반도는 안보가 보장되면서 전쟁과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세력 변동이 생길 때마다 우월한 열강의 교두보로 전락했다. 이는 전쟁과 참화로 이어졌다.


한반도 같은 완충지대 국가의 문제는 열강의 변화하는 동력에 따라서 급속히 불안정한 위상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완충지대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열강이 세력균형을 이루거나 자신들 사이의 방어공간을 보장하는 데 관심을 둘 때, 완충지대 국가는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런 세력균형이 깨지면 , 완충지대는 급속히 열강의 세력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되었다.


현재 한반도 평화의 최대 위협인 북한의 핵개발은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등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급속한 위축을 배경으로 한다. 북한의 후견세력인 러시아와 중국은 세력이 약화됐고 한국과 수교했는데,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수교하지 않았다. 고립된 북한은 핵개발로 자구책을 찾았고,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다시 중국이 부상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세력균형이 요동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균형의 위기라고 봐서는 안된다. 이는 소련의 붕괴로 기우뚱해졌던 서방 해양세력 대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세력균형 회복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의 미래가 보인다. 핵개발을 놓고 중국과 북한은 갈등하지만, 중국의 부상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안보를 담보한다. 중국에게 북한은 순망치한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에 북핵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차원의 일이다.


지금 한반도의 분단 체제는 미.중.일.러가 자국의 이해에 따라 타협해서 한반도에 강제한 완충지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민족에게는 비극이고 , 극복해야 할 체제이다. 하지만 이 분단 체제 때문에 한반도에 '불안정한 안정'이나마 유지되는 역설이 존재한다.

한반도에 관한 열강의 최대 관심사는 한반도가 상대의 영향권으로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미-일과 중-러 진영은 한반도에서 남북한 대립과 긴장을 명분삼아 상대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분단 체제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열강이 한반도에서 열전이나 급격한 세력 변화를 꾀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전쟁의 경험 등은 한반도를 분단체제를 통한 완충지대로 남겨두는 것이 열강에게 안정적 인 세력 관리에 유리함을 보여줬다.


한반도의 지정학은 먼저 이 분단체제를 인정하는 현실주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상은 분단체제의 극복이나, 현실은 그 관리가 돼야 한다. 이는 분단 체제가 주변 열강의 세력균형 차원에서 성립된 것을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현재 분단 체제와 주변 열강의 세력균형은 연계된 것이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진보의 민족통일론이나, '북한은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흡수통일해야 한다'는 보수의 반공통일론은 위험한 이상주의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독일 통일은 한반도의 모델이 될 수 없다.  독일의 통일은 유럽 최강대국인 자신들의 지정적 위상을 회복한 것뿐이다. 독일은 통일을 거부하는 주변 열강을 저지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이 북한을 국력에서 압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평화 통일의 동력이 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보수는 북한을 압박하고 고립시키면 '통일은 느닷없이 찾아온다'고 주장하나, 그렇게 찾아오는 것은 통일보다 전쟁이나 참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결코 독일이 아니다.


미국 지정학자 스파이크먼은 "열강 사이의 세력투쟁이 기본적인 현실인 국제관계의 역동적 세계에서, 작은 완충국가들의 궁극적 운명은 기껏해야 위태로울 뿐이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현 분단 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실패하면,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는 세번째 그레이트 게임의 핫스팟이 될 것이다.


분단 체제를 평화적으로 관리해 공존 체제로 안정화시켜야 한다. 남북한 두 정권 모두가 주변 열강과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가 특정 열강의 교두보가 아니라 양 진영의 완충지대로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해야 한다. 이는 결코 분단 체제의 영구화가 아니다.주변 열강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공존 체제로의 안정적 전환이야말로 분단 체제의 평화적 해소로 가는 길이다. 분단 체제의 극복은 분단 체제가 생겨나고 작동하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발췌)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