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서평)

책을 읽고) 검사 내전

정암님 2019. 4. 1. 03:12


                 검사내전/ 김웅 지음/ 부키 간/384쪽


이 책을 집은 것은 검사 혹은 검새, 떡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시중에 차고 넘치는 자화자찬의 자서전이나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인간성과 깊은 감수성을 가지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고뇌에 찬 시간을 보내는 지를 거듭 거듭 강조하는 에세이류 보다는 조금 더 읽을만 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엄청났다. 흡입력이...책이 손에서 떨어지질 않았고, 한 번 읽고 또 한 번 읽고 나서야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참고로 내가 두 번 읽는 책들은 전문서적뿐이다. 지금은 평생 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인천지검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다지만, 저자는 검사들이 기피하는, 일은 많고 욕은 곱으로 얻어 먹고 승진은 찬밥이라는 형사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칭 생활형 검사로 일했다. 입신양명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꾼 적도 없고 그저 자기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나사못같은 직장인 검사로 살면서, 세상의 억울함은 모두 안고 있다고 울부짖는 사람들과 왜 나같은 서민들만 못살게 구느냐는 자칭 서민들, 피도 눈물도 없는 극악한 파렴치범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선악과 미추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댓글에서 떠드는 것처럼 쉽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좁은 검사실에서 괴물인지 인간인지 모호한 자들과 수십 년을 부딪쳤지만 부족한 것은 더 많아졌고, 혼란스러운 요동은 더 심해졌으며, 사람에 대한 기대와 불신의 경사는 더 급해졌다. 그 과정에서 많이 식어버렸지만 아직도 약간의 온기는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인지라 때론 분노하고 때론 안타까운 감정들이 솟구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자는 그런 마음들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이 책에는 20 여개 가까운 에피소드가 실렸는데 그 글솜씨가 자못 신묘하다. 읽는 내내 울고 웃고 한탄하고 안타까워하다 순간 순간 나오는 풍자와 해학 앞에서는 절로 큰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와중에도 소소한 법률 지식을 챙겨주고 나름 굴곡있는 세상살이를 하면서 축적한 경험으로 만든 격언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있다. 저자의 삶의 고갱이라 할 이 글들은, 배려와 격려가 넘치다 못해 솟구쳐 오르는 한국 사회에서 자못 충격적이다. 두 편만 읽어 보자.


..흔히 사람들은 여럿이 모이면 좀 더 나은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집단 지성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18급 100명이 머리를 짜낸다고 이창호 국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여럿이 모일수록 그 집단이 빠진 오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 같은 오류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위기가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 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의 일시적 부침에 불과한 것을 크나큰 위기였던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유는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포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심각한 타격을 주지 않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 위기란 대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때로는 재기불능의 타격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목숨 걸고 뛰는 사기꾼, 몇 푼의 보상금을 위해 상대의 인생이 망가지든 말든 거짓 증언을 뻔뻔하게 해대는 자칭 선한 사마리아인인 요양원 사무장, 마수에 걸려든 사람들의 사골까지 우려먹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들 사이에서 저자는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법 체계하에서 저자가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 말뿐이다. ..제발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마사라. 피해자도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된 국민이지만 실제로는 2등 국민이다...


저자의 지검 시절 별명은 집요한 또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도 그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폭탄주를 마시지 못한다며 검사 자격이 없다고 갑질하던 직속 부장과 검사를 개로 아는 차장, 일사불란과 아부를 좋아하던 검사장까지 줄줄이 불러서 망신을 준다.


이렇게 한판 늘어지게 놀다 끝나는 줄 알았더니 뒷편 100여 쪽은 딱딱하고 지루한 논문형 글들이 연이어 나온다. 이름하여 '법의 본질' 카테고리다. 사실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단지 흥행을 위해 뒷면 깊숙이 꼴아박아놓았을 뿐이다..아 이 얄팍함이여^^~~

내용은 각각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 (변호사 수의 증가 및 한국 법률시장과 법률가들의 문제점, 법률시장의 미래), 엄정함을 잃은 법은 지도적 기제가 될 수 없다.(인공지능 판결에 관한 쟁점과 공정성),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조정을 통한 분쟁 해결, 회복적 사법)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한국 정치,경제, 사회 구조의 문제점) 국민들에게는 재판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양형의 편파성, 판사 선출제, 재판소원)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한다.(형사처벌 남용의 문제점, 고소고발제 개선)란 중제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어가는 데는 인내심과 끈기를 요할 것이다. 읽기도 이리 힘든데 쓰기는 얼마나 어려웠을까를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넘겨가기를 바란다. 나는 지루하고 어려운 책들은 이렇게 저자의 어려움을 상기하며 참고 또 참으며 읽는다. 


이제 저자가 가장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 독자들이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덮으며 법의 본질을 다시금 곱씹는 순간이다. 비록 처음 기대했던 검사의 은밀한 사생활을 탐구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형사사법 체계의 내면을 둘러볼 수 있어서 만족한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