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제정치 시사/현대 국제정치의 배경지식

셰일오일 그리고 트럼프와 고립주의의 등장

정암님 2019. 11. 1. 09:00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미국 조야에서는 종전 이후의 대외정책을 두고 고립주의 와 팽창주의 간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고립주의자들은 유럽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산업기반 시설과 석유 등 부의 원천은 미국에 있기에 교류를 통해 얻는 것이 고립을 통해 얻는 것보다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팽창주의자들은 생산력과 구매력을 함께 확대하지 않으면 미국 내 제조업이 성장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이는 1929년 대공황의 교훈이라고 주장했다. 논쟁 끝에 나온 결론은 고립주의로는 지속적 경제 성장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한 자원 확보 차원에서도 고립주의는 불리했다. 더하여 공산주의의 전세계적 확산을 방치할 수도 없었다.


해외 시장이 확대되려면 유럽 경제가 빠르게 복구되어야 했다. 거기에 필요한 복구 자본을 가진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또한 방대한 중동 석유를 개발할 자본을 가진 나라도 미국뿐이었다. 소련의 팽창을 저지할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역시 미국뿐이었다.


1944년 브레튼우즈협정에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든 뒤, 미국은 1947년 마샬플랜으로 불리는 서유럽 경제 원조를 단행했다. 1949년에는 미국과 서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만들었다. 마셜플랜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목적도 있었지만 유럽 경제를 빠르게 부흥시켜 미국 주도의 확대 재생산 체제에 시동을 거는 목적도 있었다. 미국은 1,2차 대전의 참전국이었지만 전화를 입지 않았고 오히려 병참공급지로서 전쟁 특수를 누렸다. 그 덕에 잉여 자본을 축적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금을 소유하게 되었다. 종전 후 미국이  통화 질서를 주도하고 자본을 해외로 수출할 수 있게 된 이유다. 미국은 잉여자본을 해외에 투자함으로써 확대재생산 체제를 완성하고, 이를 통해 전후의 위대한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확대 재생산 체제란 이렇다. 미국의 잉여 자본이 국내에 머물 경우 지속적 성장을 하기 힘들지만, 외국에 투자하면 외국의 생산력이 증가한다. 생산력 향상은 높은 구매력으로 이어져 미국의 성장을 다시 돕는 선순환 구조, 즉 확대 재생산 체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체제는 지난 세기 훌룡하게 작동했다. 달러 기반의 확대 재생산 체제는 지속적으로 파이를 키우고 냉전에서도 승리했다. 미국은 체제 대결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체제 내에서도 최강자가 되었다.그런데 미국 일극 체제가 된 21세기 이후 상황이 변한다.


 원래 금융 자본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 면은 신용 투자를 통해 사장될 수 있는 재능과 기회를 실현시키는 기능이다. 다른 면은 부를 이전하고 재분배하는 기능이다. 즉 금융을 통해 제공된 자본은 대가로 자원과 노동으로 창출된 가치를 요구한다. 수익 중 일부를 자본을 대준 금융가에게 이자 또는 배당의 형태로 지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부의 이전 기능이라고 한다. 고도 성장기에는 금융의 순기능이 빛을 발해 창업과 투자를 통해 파이가 확장되고 국민 소득이 증가했다. 하지만 그 이후 닥치는 저성장기에서, 실물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자본이 커지면 전체 생산물 중 자본 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이런 현실은 오늘날 미국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미국에서 금융업은 미국 경제의 단 7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전체 기업 수익의 25퍼센트를 가져간다. 그 결과가 금융에 의한 제조업의 파괴다. 또한 생산 활동을 위한 대출보다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1세기 이후 금융자본은 확대재생산이 아닌 부의 이전에 더 집중했다.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더 이상 예전 같은 방법으로 부를 재생산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즉 확대재생산이 한계에 부딪혔는데, 금융은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오히려 제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제조업은 몰락하고 다른 나라들은 기술 격차를 좁혀 왔다.

특히 중국은 기술을 모방하기도 하고 새롭게 발전시키기도 하며 제조업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중국은 인공지능과 5G 통신기술 등 이른바 4차산업혁명을 이끌어갈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를 위협할 만한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 일본도 모방의 천재라 불리며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보다 위협적이다.  더욱이 중국은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금융통제에서 비껴서 있다. 일본은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대국이 된 후, 미국에 의해 '잃어버린 20년'을 겪었지만 중국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안고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가 올바른 전략인지 고민해왔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셰일 오일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셰일 혁명의 영향은 2017년 이후부터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셰일 오일의 급증이 미국의 정치, 경제적 태도에 변화를 주고 있음을 세계는 경험하고 있다. 미국은 중동 정책에 더 과감해졌고, 동맹국에게는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2017년 미국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했다. 2018년에는 이란과 기존 핵 합의를 파기하고 더욱 엄격한 핵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셰일 오일로 강해진 경제 체력을 바탕으로, 출혈을 감수하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 혹은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정치학의 석학 존 미어샤이머는 2016년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논문에서 유럽과 중동의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 발을 빼더라도 독일과 러시아를 포함한 어느 국가도 지역 패권 세력으로 부상할 수 없고, 설령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저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동 역시 석유 공급 중단이 미국에 치명적이지 않다면 막대한 비용을 써가며 주둔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년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며 유럽과 중동에 미군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군대를 빼고 유럽과 중동을 관리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2010년 이후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2배 이상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미국은 2018년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었다. 부와 힘의 원천인 석유가 미국에서 쏟아지고 있다는 현실이 오늘날의 미국을 다시 고립주의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미국은 사활적 이익이 걸린 해외 석유도 없을 뿐 아니라 ,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할 이념도 없다. 과거 미국은 자국민을 희생시키는 전쟁을 감수하더라도 공산주의와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동맹국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과 동맹국의 이탈을 막기 위해 마셜 플랜이나 중남미 원조를 통해 경제 발전을 지원했다. 또 군대를 동원해 해상 교역로를 보호해서 동맹국들의 통상과 에너지 수급을 지켜 주었다. 큰 비용이었지만 패권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지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더이상 이념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소련은 무너졌고 중국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편입됐다.

또한 과거의 미국은 해외 석유 의존도가 높아 중동 석유 통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 통제에 실패했을 때는 오일쇼크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그런데 셰일 혁명은 미국이 석유를 자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열어 주었다. 트럼프 정권은 고립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왜? 해외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가치있는 자원인 석유가 이제는 자국 내에서 풍부하게 생산되고 수출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계화의 매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고 WTO에서도 탈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동맹국에게는 무임승차하지 말라며 해외주둔 미군의 감축 혹은 철수까지 추진하려 하고 있다.


중동 석유를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은 이제 미국보다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석유 수입국들에게 더 절실한 사안이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중동 석유 의존도는 석유 공급량의 70~80 퍼센트 이상이다. 당장 미 5함대의 철수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직격탄을 맞는 것은 아시아의 수입국이지 미국이 아니다. 물론 미국은 셰일 오일이 쏟아져도 중동 석유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일정 수준의 영향력 유지가 필요하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면 미국의 패권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이렇듯 셰일 혁명은 미국의 고립주의를 불러왔고 이는 석유에 대해 각국이 각자도생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셰일오일의 등장으로 나타난 미국의 고립주의는 한국에게 자신의  에너지 안보를 더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참고)

1.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최지웅 지음/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