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했지만, 성과 속을 가리지않고 황제의 권위가 최종적이란 입장을 취했다. 왕권은 교권을 압도했고 교황은 왕권에 기대어 연명했다. 왕들은 주교 임명은 물론이고 교황의 옹립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교회와 국가는 자주 갈등을 빚었다. 정신 영역과 물질 영역의 구분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 선상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주교 임명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극렬하게 충돌했다. 교황은 황제를 파문했고 버티던 황제는 고립무원이 되자, 한겨울에 카노사 성문앞에 사흘동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우여곡절 끝에 양측은 주교의 선임은 교회가 하되, 그 선임된 인물은 왕이 수용가능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타협했다. 이런 갈등을 거치면서 교회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이 갈라서기 시작했다. 성속의분리다.
오늘날의 서구국가들은 사회를 성과 속으로 구분하는 세속주의 국가들이다. 세속주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이 만든 법률이 신의 법률보다 우위에 있다.
2. 예수의 사명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다.(정교 분리)
3. 종교와 신도들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개인적 관계(신앙의 선택은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다.
세속주의는 성속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유대인, 힌두교도, 무슬림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성속분리를 거부하는 무슬림과의 갈등은 문명의 충돌을 일으키며 현재 진행 중이다.
참고)
1. 도미니언/ 톰 홀랜드 저, 이종인 역/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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