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역사을 바꾼 작물들 1편) 밀

정암님 2019. 11. 3. 23:18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인류가 처음 심은 작물은 에너지원인 곡류였다. 곡류는 그 자체로 완전 식품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가장 사용하기 쉬운 에너지원인 전분을 다량 집적하고 있었다. 곡물은 사람이 섭취하는 열량의 절반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세계 곡물의 3분의 1 이상이 동물 사료로 사용되는 등 인류의 삶에 크게 기여했다. 인류가 처음 선택한 곡물은 볏과식물인 밀, 쌀, 옥수수였다. 쌀은 동양문명권에서, 밀은 유럽문명권에서, 옥수수는 남미 인디언문명권에서 대표 곡물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해당 지역의 삶과 사회구조를 결정지었다.


아시아는 쌀농사를 주로 했고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에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쌀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소비되었으므로 무역 상품으로서의 쌀의 가치는 높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일찍이 통일된 대제국을 만든 중국의 영향권 내에 살았던 아시아인들은 전제군주체제 하의 복종만이 살길이었기 때문에 서양인과 같은 경쟁심이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못했다.

그에 반해 밀을 주식으로 했던 서양인의 경우 밀의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에 새로운 식량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 시도했다. 특히 좁은 지역내에 여러 나라가 경쟁하는 유럽 국가들의 특성상 치열한 경쟁은 부를 차지하기 위한 모험심에 불을 붙였으며 이 모험심, 지적 탐구심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했고 ,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다.


볏과식물은 약 1억 4000만년 전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밀, 쌀, 옥수수, 보리, 호밀, 귀리 등의 곡류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하여 자연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지역에서 재배됐다. 가령 밀은 한랭건조 지역에서, 벼는 고온다습 지역에서, 옥수수는 신선한 고랭지에서 주로 재배됐다.


밀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작물이다. 밀에는 전분뿐만 아니라 단백질도 8~18퍼센트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물과 반죽하면 글루텐이라는 망상 조직을 만들어 빵을 구울 때 절묘한 역활을 한다. 그러데 밀은 재배하기 매우 까다로운 작물이다. 토양에 질소질 함량이 풍부해야 하며 , 연간 강수량이 762 밀리미터 이하의 건조한 기후와 한랭한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이런 조건의 적지는 지중해 주변의 지중해성 기후대이다.


식물은 자신의 몸에서 씨앗을 땅에 떨어뜨려 뿔뿔이 흩어지게 함으로써 번식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성질을 탈립성이라 한다. 볏과 식물 역시 탈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탈립성이 있는 이상 인류에게 안정적인 식량원이 되지 못했다. 인류가 최초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서남아시아의 산악지대에는 밀속의 야생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돌연변이 일립계 밀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사람들은 이를 채취해서 농사를 지었고, 밀 글루텐의 점탄성을 이용해 빵이나 면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는 동안  밀은 이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이 되었고,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곳곳에서 농부들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밀의 품종을 개량해나갔다. 그럼에도 밀은 14세기까지 파종량 대 수확량의 비가 1 대 3에 불과할 정도로 생산성이 낮았다. 생산성이 높은 쌀이 동양을 인구밀도가 높은 사회로 만들었다면, 밀은 서구를 인구밀도가 낮고 농경에 가축 의존도가 높은 환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밀에는 신성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구인들이 신세계 발견 후 빵을 먹는 자신들에게 특별한 우월의식을 부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서구인들의 흰빵에 대한 욕구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로 인해 밀로 만든 흰빵은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었고 사치품이 되었다. 농민과 하인은 호밀이나 딩켈밀 혹은 기타 잡곡으로 만든 흑빵이나 곡물 죽을 먹었다.


유럽의 농업은 밀 생산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밀은 생산성이 낮았다. 특히 밀의 생장에는 질소 성분이 많이 필요해(밀의 단백질 함량은 쌀보다 높다) 지력을 잘 유지하는 것이 농업의 성패를 갈랐다. 식물은 성장하고 탄수화물을 만들어내려면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성분이 질소다. 식물은 뿌리를 통해 땅에서 질소를 받아들여 세포와 조직을 만든다. 따라서 토양에 질소가 부족하면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충실히 맺을 수 없다. 고대인들이 사용한 질소원 보급 방법은 재와 동물, 사람의 배설물을 이용하는 방법, 콩과식물의 뿌리혹박테리아가 만드는 질소를 이용하는 방법, 윤작(예를 들면 맨 처음 기장, 조등의 잡곡류를, 다음 계절에는 콩 같은 두과작물을, 그 다음에는 참깨 등의 유과작물을 차례로 심는 식)이었다. 이들 방법은 고대 중국에서 널리 행해졌으나 유럽에서는 상당히 늦게 도입됐다. 유럽은 고대 로마 시대이래 이포제(1년에 한 번씩 땅을 쉬게 하는 방식)를 시행하다 식량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중세에 삼포제(경지 전체를 삼등분하여 한 곳에는 봄에 파종하는 보리, 귀리 등의 여름작물을 심고, 다른 곳에는 가을에 파종하는 밀과 쌀, 보리 등의 겨울작물을 심으며, 나머지는 휴경지로 가축 방목에 사용. 이는 가축의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고 완전한 휴경이 아니어서 생산량이 증가)를 도입했다. 18세기 중반에는 사륜작법(노퍽농법)을 이용해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사륜작법이란 4년 주기로 가을소맥, 보리와 클로버, 순무를 순서대로 돌려짓는 농법이다. 클로버는 콩과식물이라 지력을 회복시키는데 효과가 좋은 대표적 녹비식물(비료로 사용되는 식물)이다. 이 방식은 휴경지를 두지 않고 토지를 더욱 집약적으로 사용하여 곡물 생산량을 증가시켰다. 이후 구아노(남미에서 산출되는 새똥 축적물), 초석등의 천연 질소비료를 거쳐 1908년 프리츠 하버가 화학 질소비료를 개발함으로써 농업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렸고 이에 따라 질소에 의존하던 밀의 생산량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20세기 들어 진보적 육종법이 개발되자 밀 생산은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사람들은 이 위대한 인류사의 혁신을 녹색혁명이라 불렀다. 


<밀의 장점>

1. 단백질, 지방, 미네랄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어, 영양학적으로 비교적 균형 잡힌 곡물이다.

: 단백질 함량이 쌀은 7.1%, 밀은 12.6%, 옥수수는 9.4% 정도다


<밀의 단점>

1. 수확량이 쌀과 옥수수에 비해 적다.

:15세기 유럽에서 밀의 수확량은 파종량 대비 3~5배 정도였지만, 벼는 17세기 무렵 파종량 대비 20~30배였다. 오늘날에도 벼는 파종량 대비 120~140배지만 밀은 20배 정도에 불과하다.

2. 재배하기가 까다롭다.

토양에 질소질 함량이 풍부해야 하며 , 연간 강수량이 762 밀리미터 이하의 건조한 기후와 한랭한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참고)

1. 사피엔스의 식탁/ 문갑순 지음/ 21세기북스

2.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역/ 사람과 나무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