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채집 시절에는 빈부차가 나기 어렵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한 번에 많은 사냥감을 잡았다 해도 한 번에 먹는 양에는 한계가 있고, 남은 것은 저장하기 어려우므로 주위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으로 얻은 곡물은 얼마든지 저장해두었다가 필요시에 먹을 수 있다. 저장이 가능한 식량은 곧바로 부의 창출로 이어졌다. 빈부차가 발생하고 부를 축적한 사람은 권력자가 되어 국가와 같은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관개시설과 각종 도구가 필수적이다. 사람들이 그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벼농사는 쌀 수확은 물론 청동기, 철기 등 최신 기술과 우수한 토목술을 발전시켰다. 토목술과 철기는 전쟁에서도 유용하다. 따라서 당대 벼농사 집단은 벼농사를 짓지 않는 집단을 무력 면에서 압도했을 것이다. 부를 손에 넣고 뛰어난 기술을 갖춘 초기 농경집단은 아직 수렵.채집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집단을 압박하고 수탈했다.
전근대 시대 쌀은 주식외에도 또하나의 중요한 용도가 있었다. 화폐 기능이다. 현대인들은 지폐를 내고 상품과 교환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지폐는 그저 숫자를 적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식량 공급이 넉넉치 않는 상황에서 화폐나 금, 은 등에 치중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면 돈은 있어도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근대 시대에는 쌀이 화폐기능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쌓으려고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려 애썼다. 아니면 적어도 쌀생산과 공급망(화폐유통체계)을 갖춰 굶어 죽는 사람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화폐로서 쌀이 갖는 긍적적 기능이다.
벼의 재배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야생의 습지성 볏과식물에서 서아프리카 원산인 오리자 글라베리마(Oryza glaberrima)와 아시아 원산인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가 독자 작물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벼의 기원지는 인도 동부설, 중국 기원설, 인도차이나반도 기원설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벼는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아삼에서 미얀마, 태국, 라오스, 중국 윈난에 걸친 넓고 긴 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실제 야생종 벼는 인도에서 타이완에 이르는 지대에서 자라고 있다.
최근의 유전체 정보 분석에 따르면 동양에서 벼의 재배는 약 8,200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고학자들이 이미 양쯔강 유역에서 8,000~9,000년 전에 벼를 재배한 증거를 찾아냈으므로 이곳이 벼의 재배 기원지라는 결론에 더 가까워보인다. 이는 서남아시아에서 밀과 보리의 경작이 시작된 시기와 비슷하다.그런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의 유물은 한국 충북 청원군 소로리 유적에서 발견된 1만5,000년 전 볍씨다. 중국 후난성 옥섬암의 벼 재배유적에서 발견한 볍씨도 약 1만5,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현대 쌀과의 유사도가 39.6%여서 야생종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쌀은 대략 1만5,000년 전 원시인들이 야생종 벼를 찾아 식용한 것이 시초라고 생각된다. 이후 3,900년 전에 쌀은 인도형(인디카)과 일본형(자포니카)의 두 품종으로 분화된다.
쌀은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쌀의 세계 총 생산량 중 약 92퍼센트가 아시아에서 생산되며, 또 대부분을 아시아인이 먹는다.
<곡물로서 쌀의 장점>
1.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높다.
:인구 천만 명을 부양하는 데 옥수수의 경작 면적은 4,883제곱킬로미터, 쌀는 5,952제곱킬로미터, 밀은 9,238제곱킬로미터가 필요하다(2010년FAO,OECD 평균 수치). 이처럼 재배 면적당 생산량을 비교하면 옥수수가 가장 뛰어나다. 그러나 옥수수는 지력 소모가 심하여 고대에는 연작이 불가능했고 밀은 중세의 삼포제가 보여주듯 옥수수보다는 덜하나 연작이 불가능했다. 반면 쌀은 연작과 이모작이 가능했고 특히 동남아같은 고온다습 기후에서는 삼모작도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쌀 재배지는 최고의 인구 부양력을 갖게 되었다. 통상 쌀의 인구 부양력은 밀의 3배 정도라고 한다. 이 차이가 전근대시대에 동양이 서양을 압도했던 이유였다.
2. 파종량에 비해 수확량이 많다.
:15세기 유럽에서 밀의 수확량은 파종량 대비 3~5배 정도였지만, 벼는 17세기 무렵 파종량 대비 20~30배였다. 오늘날에도 벼는 파종량 대비 120~140배지만 밀은 20배 정도에 불과하다.
3. 영양학적으로 우수.
:쌀 100그램이 360Kcal의 높은 열량을 내는 데 비해 옥수수는 348Kcal, 밀은 330Kcal를 낸다. 또한 쌀 100그램 중에는 단백질이 7.5그램 함유되어 옥수수의 8.9그램, 밀의 12.3그램보다는 낮지만 세 곡류 중 단백질의 영양가는 가장 우수하다. 따라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은 상당한 양질의 단백질을 쌀로부터 취할 수 있었다.
<쌀의 단점>
1. 아미노산인 라이신(lysine)이 부족.
: 쌀에 부족한 라이신을 풍부하게 함유한 식품이 대두다. 결국 쌀과 콩(된장국)을 섞어 먹으면 완전한 영양식이 된다.
참고)
1. 사피엔스의 식탁/ 문갑순 지음/ 21세기북스
2.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역/ 사람과 나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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