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왜 박쥐는 수많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었나?

정암님 2021. 1. 25. 11:40

2002년, 2015년, 2019년에 유행한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와 2016년 서아프리카에 출현해 수많은 사망자를 낸 에볼라 바이러스는 박쥐를 숙주로 삼아 증식하다 인간에게 넘어온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광견병 바이러스도 박쥐가 숙주였다. 이처럼 박쥐는 많은 인수공통감염병 바이러스의 숙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확률적으로 볼때 특이한 현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박쥐가 바이러스의 숙주로 당연시 되는 이유를 알아보자.

 

1. 박쥐의 종류와 숫자가 놀랄 만큼 많다

지금까지 발견된 박쥐는 1000여 종에 달한다. 이는 전체 포유류 종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처럼 전체 포유류 중 박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그만큼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2. 박쥐의 활동공간은 3차원적으로 높고 넓다.

박쥐는 포유류 중에서 유일하게 날 수 있는 종이다. 즉 박쥐는 땅과 하늘을 가리지 않고 3차원적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서식지를 찾고, 최대 1300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활동 반경이 넓은 박쥐 덕분에 바이러스는 효과적으로 자신의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3. 군집 생활을 한다.

바이러스가 어떤 숙주 집단에서 높은 감염력을 유지하려면 집단의 개체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개체수가 너무 적으면 바이러스가 다른 개체로 전파되기 전에 소멸되기 때문이다. 멕시코자유꼬리박쥐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0센티미터인 작은 공간에 약 300마리가 모여 잠을 잔다. 숙주가 엄청난 밀도로 모여 사는 셈이다. 이는 바이러스에게 한 번에 많은 숙주를 공략할 수 있는 매우 좋은 환경이다.

4.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 있는 독특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점도 바이러스에게는 유리하다. 감염된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증식하지 못하고 함께 사멸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세포들이 인터페론 등의 신호 물질을 분비한다. 이들 신호 물질은 더 많은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른다. 그런데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아도 체내에 인터페론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즉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치명적인 병원성을 보이면 즉각 면역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어, 특별히 아프지 않고도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 있다. 또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어 면역과민 반응인 사이토카인 폭풍도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까지 박쥐의 몸속에는 최대 200종의 바이러스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바이러스의 저장고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들 바이러스는 면역반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완벽한 숙주의 몸속에서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언제든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발췌 요약)

1. 바이러스/ 과학동아 단행본/ 2020년 7월 초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