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역사를 바꾼 작물들 5편) 콩

정암님 2019. 11. 7. 21:38


인류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세계 각지에서 재배작물 선정이 유사한 패턴으로 이루어졌다. 즉 에너지원으로서 곡류와 곡류의 단백질 부족을 보완해주는 콩류가 조합된 것이다. 인류가 주식으로 곡류를 선택한 마당에, 만일 콩을 파트너 작물로 선정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생존 가능성은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인류가 곡류를 선택한 것은 에너지원을 얻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그런데 곡류의 주요성분인 전분만으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다 얻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특히 신체의 주요 구성성분이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단백질의 부족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곡류의 단백질 부족을 보완하는 식품이 콩류이다. 콩류에는 단백질이 20퍼센트 이상 함유되어 있고 영양 조성도 우수하다. 특히 대두(메주콩)에는 약 40퍼센트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미노산 조성도 어느 콩류보다 빼어나다.


콩은 아시아에서 주곡으로 이용되는 쌀과 놀랄 정도로 훌룡한 영양 매치를 이룬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쌀은 영양 균형이 뛰어난 식품이다.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단백질과 지질이 풍부하다. 결국 쌀과 콩을 조합하면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질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곡류에는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부족하다. 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콩에는 라이신이 많다, 대신 필수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부족한데 쌀에는 메티오닌이 풍부하다. 따라서 쌀에 콩을 약간만 섞어 먹어도 단백질 효율은 놀랍도록 향상된다.


콩류가 높은 단백질을 축적할 수 있는 이유는 콩 뿌리에 질소고정 박테리아가 기생하고 있어서다. 식물이 자라는 데 가장 중요한 영양원은 질소 성분이다. 질소는 공기 중 약 78퍼센트를 차지하지만 동식물은 이를 영양원으로 이용할 수 없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콩 뿌리에 붙은 작은 혹에 함유된 미생물을 말한다. 이 토양세균은 공기 중의 질소를 동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질산염 형태로 변화시키는데 이를 질소고정이라 한다. 콩과식물이란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할 수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모든 콩류로 정의된다. 그러나 씨앗에서 싹을 틔울 때는 질소고정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콩은 질소고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씨앗 속에 미리 질소 성분인 단백질을 저장해둔다.  


식생활에 이용되는 콩과 식물 종류는 전 세계에 650속, 1만8,000종이 있고 한국에만 36속, 92종이 알려져 있다. 완두콩, 렌틸콩, 메주콩, 아즈기콩, 멍콩, 누에콩, 테퍼리콩, 강낭콩, 리마콩, 땅콩, 이집트콩 등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콩은 서남아시아에서 재배된 렌틸콩과 완두콩이다.


콩은 한민족과 관계가 깊다. 콩의 원산지가 만주와 한반도 북부이고, 최초로 콩을 발효시켜 먹은 것도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콩은 영양가가 높은 좋은 식품이지만, 콩에는 단백질의 소화를 막는 트립신 저해제나 혈청용해제인 헤마토글루테닌, 장을 불편하게 하는 스타키오스 등의 건강 저해물질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콩을 다량으로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콩을 발효시켜(두장) 먹는 것이다. 거기다 콩을 발효시키면 콩 단백질이 분해되어 글루탐산이 대거 만들어지는데 글루탐산은 인공조미료로 널리 사용되는 MSG의 구성 성분으로 음식의 기본적 밑 맛을 내는 작용을 한다. 또한 발효 과정에서 곰팡이가 가진 전분분해효소와 단백질분해효소의 역할로 생성된 당과 아미노산들이 마일라드 반응에 관여하며 매력적인 갈색과 좋은 풍미를 내는 것도 장의 강력한 매력이다. 장은 백미(百味)의 으뜸이란 의미인데, 이런 두장을 만든 사람들이 만주에 살던 고구려인이었다. 두장의 맛은 감칠맛인데, 그 맛이 지극하여 입맛을 살려주기로 명성이 자자해 중국인들이 앞다투어 애용했다는 기록이 곳곳에 남아있다. 감칠맛은 다른 맛을 살려주는 맛이다.


그 후 콩 재배와 장 만드는 기술은 중국 남부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갔다. 동남아인들은  이를 변형하여 콩에다 캐러멜화한 많은 양의 야자당과 향신료를 넣어 독특한 간장을 만들었는데, 생산자에 따라 어장을 첨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케찹 마니스이다.

17세기 이후 동남아의 간장과 어장은 유럽에 전해졌고, 간을 주로 소금으로 했던 그들에게 간장의 감칠맛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비쌌기에 영국인들은 자국의 재료로 비슷한 소스들을 개발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토마토 케첩이다.


콩은 비린 맛 탓에 유럽인들에게 매력적인 작물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18세기 미국으로 콩이 전파되면서 콩은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된다. 미국인들은 콩에서 기름을 생산(식용유)했고, 남은 찌꺼기인 대두박은 사료로 만들어 팔아치웠다. 대두박 사료는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가축용 사료로 주로 사용되던 옥수수는 단백질 품질이 나빠(옥수수 단백질은 47에 불과) 닭들이 서로를 쪼아 먹는 형편이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육류 소비가 급증하자 대두의 수요도 급증했다. 이에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로 콩 생산이 확대됐다. 사료용 외에도 콩고기, 콩 플라스틱, 콩 잉크, 콩 섬유, 콩 페인트 등 다양한 콩 제품들이 쏟아졌다. 1990년대 이래 콩 이소플라본이 연구가 많이 되면서 FDA는 '하루에 콩 단백질 25그램 섭취로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문구를 제품에 표시하는 것을 허용했다. 


20세기말 유전자 조작 콩인 GMO콩이 개발되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졌다. 2012년 이래 미국 콩 시장의 96퍼센트는 GMO콩이 차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콩의 원산지이자 아메리카 대륙에 콩을 전해준 아시아에서는 근래 들어 거꾸로 콩을 수입하는 국가가 많다. 한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대두 자급률이 5퍼센트가 안되고 일본도 10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아시아 국가의 대두 자급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미국의 농업정책이다. 미국이 밀과 대두를 대량 재배해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국내 생산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였고 한국과 일본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양국은 수입할 수 있는 것은 수입하고 주식인 쌀 생산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콩은 북미와 남미가 생산을 전담하며 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작물로 거듭났다.


<콩(=대두=메주콩)의 특징>

1.단백질 함량이 40퍼센트에 이른다.

:영양학에서 양질의 단백질 식품이라고 칭송하는 육류, 계란, 생선에도 20퍼센트 가량의 단백질이 함유됐을 뿐.

2. 영양적으로 우수한 아미노산 조성

:미국식품의약청(FDA)은 필수아미노산의 비율이나 생물학적 활용 가능성을 고려한 콩의 단백질 영양가를 달걀이나 우유 단백질과

 같은 1.0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쇠고기(0.92), 밀(0.4)보다 높은 수치이다.

3. 지방 함량이 20퍼센트

:이를 추출해 만든 대두유는 식용유의 급원으로 세계 제일. 게다가 기름을 짜고 남은 대두박은 가축이나 양식장의 사료로 활용.

4. 이소플라본, 사포닌, 레시틴 등의 특수 성분 함유.

:생리활성물질로서 여러 질병의 예방과 치료제로 사용.


<콩의 용도>

1. 녹비 식물

:콩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서 화학비료가 개발되기 전까지 토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유일한 녹비로 사용.

2. 식용

:영양가가 높다.

3. 사료용

:가축이나 어류의 사료로 사용되면서 인류의 단백질 급원을 뒷받침하는 기능 수행. 세계적으로 콩의 90퍼센트가 사료로 이용.

이 때문에 각지의 산림이 콩밭으로 바뀌어가면서 또 다른 환경문제를 낳고 있다. 


참고)

1. 사피엔스의 식탁/ 문갑순 지음/ 21세기북스

2.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역/ 사람과 나무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