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국사

동입서출(東入西出)/ 중세 조선인들의 방위관

정암님 2018. 3. 5. 15:17


왕릉이나 서원의 삼문 안내판을 보면 동입서출을 하라고 쓰여 있다.  

대개 동입서출을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왼쪽)으로 나온다고 풀이하는 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유교 전통사회에서 입入, 출出개념은 내, 외의 경우처럼 특정 공간의 주체를 중심으로 정의된다. 왕릉의 경우 주체는 왕이다. 왕을 기준으로 하면 입은 '들어간다'가 아니라 '들어온다', 출은 '나온다'가 아니라 '나간다'가 된다. 또 동쪽을 오른쪽, 서쪽을 왼쪽으로 설명한 것도 잘못이다. 유교문화권의 방위관은 성인남면(聖人南面), 즉 성인이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배북향남(背北向南)을 방위의 중심으로 삼는다. 남향을 정방향으로 보기 때문에 실제 방향과는 무관하게 모든 집들의 방위를 일단 남향으로 간주하고, 이 기준에 따라 동쪽은 왼쪽, 서쪽은 오른쪽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입.출 질서는 서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서원 공간의 주체는 왕이 아니라 사당에 모셔진 선현이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동쪽 문(왼쪽)을 입문, 서쪽 문(오른쪽)을 출문으로 설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사(人事)를 천계 운행 질서와 나란히 하기 위함이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을 거쳐 서쪽으로 진다(시계방향으로 회전=좌선). 이것이 천계의 운행 질서다. 운행 시작점은 동쪽, 즉 왼쪽이고 종착점은 서쪽, 즉 오른쪽이 된다. 들어온다는 것은 문 안의 생활이 시작됨을 뜻하고, 나간다는 것은 안에서의 일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문(왼쪽문)을 입문으로, 서문(오른쪽문)을 출문으로 삼은 것이다.  


주련을 걸 때는 건물 전면의 맨 왼쪽(동쪽)기둥을 시작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순차적으로 거는데, 이 역시 천계 운행 방향과 나란히 하기 위함이다. 삼문 출입과 주련을 거는 사소한 일까지도 동서, 좌우를 분별한 것은 그렇게 해야 천리의 자연스러움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문을 출입할 때 동입서출의 질서를 거슬렀다면 그는 천도에 역행하는 사람이 된다. 


발췌) 

1. 한국의 서원/ 허균 지음/ 다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