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선비들은 산수 자연을 즐기되 꽃 하나, 나무 하나에 관심을 갖거나 근경에 집착하지 않
고 원경을 관조했다. 부분보다 전체를 관조하는 이런 태도는내심과 외경이 일체된 경지를 추
구하려는 마음때문이었다.
다음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여창의 후손 정환필이 남계서원의 누각을 두고 지은<풍
영루기>의 한 대목이다. 당시 유생들이 산수 풍광을 어떤 마음으로 감상했는지 알 수 있다.
"백척은 안되지만 높이 솟아 사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교외가 평평하고 넓으며 천택이 감싸
흐르고 멀리 있는 숲이 짙푸르게 무성하며 저물녘의 노을은 성대하다. 백암산의 몇몇 짙푸른
봉우리가 저녁 빗 속에 들어 반이 숨었고, 뇌계의 한 방면이 아침 해를 띠고 온전히 드러난다.
대나무, 잦나무 우거진 앞쪽 촌락에선 우는 새가 봄을 재촉하고, 농사짓는 옛 마을에선 늙은
농부가 가을철을 안다."
발췌)
1.한국의 서원/ 허균 지음/ 다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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