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국사

사당의 방위/ 조선인들은 사당을 어느 쪽에 세웠나?

정암님 2018. 3. 5. 17:00


예는 유교의 실천윤리이고, 예의 근원은 제사였다. 

예는 제사의례만이 아니라, 제사의례를 행하는 곳인 사당 건물의 위치와 향배, 내부 감실의 위치와 위폐의 배치 순서 등 공간적 질서에 의해서도 구현되었다.


사당의 위치와 향배

사당은 대개 북쪽에 터를 잡고 남향했으며 , 경사지인 경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 축대 전면 좌우에 각각 계단이 마련돼 있고, 마당 남쪽에 세 칸 구조의 내삼문이 자리 잡았다.

경역 뒤쪽에 배치되는 사당은 실제 방향과 관계없이 북쪽에 배치된 것으로 간주된다. 동일한 이치로 앞뒤 축선에서 왼쪽에 있는 재사는 동재가 되고 오른쪽에 있는 재사는 서재가 된다. 


유교에서 건물의 위치와 향배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천리에 순응하여 예를 구현하는 방도이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인간 본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본다. 때문에 하늘과 사람의 상호 관계에서 하늘은 항상 인간의 본원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본원인 하늘의 질서, 즉 천리를 따르는 일을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 전통 시대에 건물의 공간 배치에 내재된 질서 의식은 우주 자연질서 즉 천리에 대한 순응이었다. 


고대인들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가운데 북극성에 주목했다.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에서 뭇 별을 거느리고 있어 중추라고 불렸고 만인 위에 군림하는 왕에 비유되었다. 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등극이라 하고 왕의 자리를 남면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조선 시대에 사당을 북쪽에 배치하는 것은 이처럼 북쪽이 최상위 방위이며 후손들을 바라보는 최존자의 자리로 상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탈진 지형에서는 고저를 고려하여 가장 높은 곳에 사당을 배치한다. 이는 제사를 받는 사람이 가장 높은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실제 방향과 상관없이 사당이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간주했고, 그렇게함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최존의 자리가 되었다.


북을 제외한 나머지 방위도 구분과 질서가 있다.

좌우와 동서의 서차는 천계 운행 질서에 맞추어져 있다. 양사(陽事)일 걍우는 좌(동)를 우위에 놓는데, 이유는 천계운행의 시점이 왼쪽(동)이기 때문이다. 음사(事)의 경우에는 우측(서)이 상이 된다. 이 관례는 북쪽이 산 자나 죽은 이에게 공히 위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사당에 위패를 봉안할 때는 최상위가 중앙 북쪽이다.

배향하는 신위가 복수일 경우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의 원칙에 따라 배치한다. 도산서원 상덕사의 경우, 이황의 위패는 중앙 북쪽에, 그 왼쪽(동쪽)에 제자인 조목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이황이 중앙에 있는 것은 중앙이 상이므로 당연하다. 다음 순서는 음사이므로 서쪽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조목이 같은 벽면에서 오른쪽(서쪽)에 위치할 경우, 이황과 조목만 놓고 보면 이황이 동쪽에 있게 되어 오히려 하석처럼 보이므로 지금처럼 조목을 동쪽에 모신 것이다.


발췌)

1. 한국의 서원/ 허균 지음/ 다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