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는 탐학이 풍습인 시대였다. 수령과 아전이 강도인 시대였다.
이에 맞서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조정은 농민 항쟁의 원인이 삼정 문란에 있다고 판단하고
조세 문제 논의를 위한 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했다. 이어 약 3개월간 전국에서 삼정을 바로잡
기 위한 개혁안을 모집했다. 그리고 20여일 뒤 삼정이정책을 제정 발표했다.
부가세와 도결을 없애고 각종 세금은 법대로 징수한다.
군역에는 연령 규정을 엄격히 준수한다.
환곡을 없애고 토지 1결당 2냥씩 부과한다.
이 방침은 백성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조정은 그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민란
이 잦아들자 없었던 것으로 만들었다. 삼정이정책을 서둘러 만들어 완벽하지 못하기에 옛 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들이 내건 궁색한 변명이었다.
요약정리)
1.19세기/ 김정인등 지음/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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