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답사 103

[스크랩] 가장 오래된 당간지주는 분황사 당간지주

가장 오래된 신라 당간지주는 분황사당간지주 분황사 당간지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192호인 이 당간지주의 남쪽에는 황룡사지가 있고 북쪽에는 분황사가 있다 즉 황룡사의 뒤쪽이 되는 동시에 분황사의 앞쪽에 당간지주가 위치하고 있어서 이 당간지주의 소속을 두고학자들이 견해를 ..

석굴암 답사가이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1961년 보수공사가 시행되어 1964년 끝났지만 그후 석굴암은 물바다가 되었다. 준공2년뒤 에어컨을 설치, 강제로 습기제거를 시행했고, 그로부터 50년이 다된 오늘날까지도 석굴 바로 옆에 붙은 기계는 진동소리를 내며 하루24시간 1년 365일 계속 돌아가고 있다. 1971년 석굴보존을 이유로 석..

석굴암(석불사), 그 오욕의 역사 2편: 보수공사 그리고 쟁점들

1913년부터 3년간 일제는 석굴을 완전해체해서 보수했다. 그 과정에서 석굴을 두께 2미터의 콘크리트돔 으로 덮고 286개의 석재를 교체했다. 천장 앞부분만 수리하면 되는 간단한 공사를 이렇게 방대하게 한 이 유는 문화유산 하나 지키지 못하는 조선인의 열등성을 강조하고 일본의 은혜..

석굴암(석불사), 그오욕의 역사 1편: 약탈

석굴암은 잊혀져 가고 있었다. 석굴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된것은 1907년무렵이었다.1905년 설치된 통감부의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이땅에 도굴을 조장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무수한 고려청자를 일 본천황과 일본귀족들에게 선물했다. 그로인해 고려시대 고분이란 고분은 모조리 도..

석굴암(석불사)은 어떤 가치가 있나? 국제 석굴운동의 종착지:인도에서 경주까지

석굴암은 인간이 만들어낼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술로 축조되었다. 석굴암의 구조는 그 평면과 입면 이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수리체계를 이루어 부분과 부분의 조화, 전체에 의한 부분의 통합이 빈틈없 이 이루어져 있었다. 엄청난 무게의 돌을 깎아 세우면서도 10미터에 1밀리의 오차도 ..

서울 부암동 답사기 2편) 백석동천,홍제천의 비극,화냥년...

유홍준은 강진,해남을 주저없이 남도답사 1번지로 꼽았다. 언제나 역사의 변방이어서 대단한 유적, 유물이 있을지 만무하지만, 거기에는 붉은 황토빛이, 시푸른 바닷물이,짙은 녹색의 논밭이 있었다. 또 그속에는 살아간 선조들과 살아온 자들의 체취가 강렬하게 남아있았디. 무엇을 더 ..

서울 부암동 답사기 1편)별서문화의 흔적을 찾아서..

조선조시기, 도성과 가까운 경치좋은곳에는 어김없이 세도가들의 별서가 들어섰다.부암동이 그곳 이다. 북악산과 북한산,인왕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던 이곳은 지금은 서울 중심부가 되었지만 한때 수려했던 과거의 모습을 여지껏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도심속 시골이라고 부르는 이..